칼럼

[월요칼럼]개 식용 종식법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김연희 상지대 FIND칼리지 조교수

어릴 적 집 마당에는 늘 개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유독 사랑했던 발바리 '펭키', 그 시절 막 나온 두루마기 화장지 이름을 따서 붙인 바둑이 '뽀삐', 그리고 길쭉한 다리와 다부진 체형의 누렁이 '럭키'가 대를 이었지요.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이사 가는 트럭에 함께 실려 서울로 오게 된 럭키는 그해 여름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퇴근 후 럭키가 없어진 것을 안 엄마는 열흘 넘게 온 동네를 훑으며 럭키를 찾아다녔지만. ‘개장수가 며칠 돌아다니더라’는 말만 들어야 했습니다. 키우던 개가 한여름에 사라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던 어린 마음에도 섭섭함이 컸는데, 이후로 두 번 다시 개를 키우지 않은 엄마의 충격과 상처는 생각보다 훨씬 깊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개를 키우는 일은 ‘로망’이 되었습니다. 개는 마당에서 길러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공동주택에서 개를 기르는 것이 대부분 금지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90년대 중반, 신혼을 보낸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품종견을 기르게 됩니다. 생후 3개월의 프렌치 불독 '그리프'를 데려온 날, 어미 개와 새끼가 함께 앉아있던 러시아 시장의 풍경도 기억에 생생하지만, 뜨거운 햇살을 피하려 펼쳐 든 개주인들의 우산이 모두 어린 강아지와 모견을 향해 기울어져 있던 모습은 잊히지 않습니다. 집주인 따마라는 ‘개는 집안에서 길러야 하고 산책은 필수‘ 라고 일러주었고 운전사 알레그는 ‘짖어’, ‘앉아’, ‘기다려’ 같은 훈련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프를 한국으로 데려갈지, 러시아에 두게 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던 터라, 러시아어와 우리 말 모두로 훈련했는데, 그리프는 이중언어(bilingulal)견이 되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처음으로 집 안에서 강아지를 키워보니 유난스러워 보였던 서양인들의 개 사랑이 자연스레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마당개들에게서 느꼈던 친밀감을 훌쩍 뛰어넘는 애착과 유대를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프와의 짧은 만남과 이별 후, 한동안 개를 기를 용기와 엄두가 나지 않았고, 2010년대 초반 미국 생활에서야 마음의 여지가 생겼습니다. 사촌 동생 부부의 성견 ‘카즈모’는 가족과 다름없는 대우를 받고 있었는데, 제부는 카즈모와 함께 출퇴근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추석이나 크리스마스와 같은 가족 모임에도 빠지지 않고 데려왔습니다. 아이처럼 구명조끼를 입혀 강가에 내보내는가 하면 급성 당뇨가 왔을 때는 시간 맞춰 정성스레 주사를 맞혔지요. 동생 부부를 대신하여 보름 정도 카즈모를 돌본 적이 있는데, 이후 카즈모는 늘 먼저 다가와 격하게 반가움을 표시했습니다. 함께 한 짧은 시간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카즈모의 영특함과 다정함도 대견했지만, 무엇보다 나이 든 개가 일상에 주는 평온함과 안정감은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이제 제 곁에는 말티즈 ‘바람이’가 있습니다. 한 살이 넘어 우리 집에 온 바람이는 곧 12살의 노령견에 접어듭니다. 관절은 예전 같지 않아 계단 오르는 속도는 느려지고, 가지런한 앞니는 삐뚤빼뚤해지고, 핑크색 뽀얀 등에는 노인성 반점이 하나둘 생겼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산책’과 ’간식‘에는 진심이고 똘망똘망한 눈과 기발한 몸짓으로 애교도 부리고 성질도 부리며 제 의사 표현 다 하는 나의 반려견에게서, 함께 늙어간다는 동지애를 넘어, 생명에 대한 경외와 연대, 무한한 애정과 연민을 배웁니다.

돌이켜 보면, 내게는 더없이 소중한 개들이 다른 누군가에겐 그저 식재료에 불과한 현실도 인정해야 했습니다. 참 오랜 세월이었지요. 지난 7월 시행된 '개식용종식법'에 대한 감회가 남다른 이유입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합니다만, 기왕 만들어지고 시행된 법이니, 예정대로 2027년 2월까지는 개식용이 완전종식되어 세상의 모든 개가 ‘반려견’으로서만 존재하기를 고대합니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피플&피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