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호등]참전유공자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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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겸 사회체육부 기자

기자는 경기 가평에 위치한 수도기계화보병사단 ‘맹호부대’ 신병교육대의 마지막 기수로 입대해 군 복무를 시작했다. 당시 소대장과 조교들은 “맹호부대는 1965년 10월 베트남 퀴논에 상륙한 최초의 해외파병전투사단으로 역사와 전통이 깊은 부대”라며 귀에 딱지가 앉도록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신교육의 일환으로 맹호부대의 월남전 전투 영상을 반복 상영해 줬는데, 화질이 흐릿한 흑백 화면 속에서도 파병 용사들의 기개와 전투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머나먼 타국의 험지에서 자신의 청춘을 바쳤던 이유는 무엇일까?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만난 월남전참전자회 강원특별자치도지부 회원들은 ‘애국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파병 수당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국가가 부르니 ‘당연히 가야 한다’는 애국심이 최우선이었다는 것이다. 애국심으로 비롯된 이들의 파병은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초석을 다져냈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6·25 전쟁과 월남전 참전유공자들은 제대로 된 예우를 받지 못한 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강원특별자치도에 거주하는 참전유공자 수는 8,703명이다. 2013년만 해도 1만5,906명이었는데, 10년 사이 절반 가까이에 이르는 7,203명의 참전유공자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살아 있는 강원지역 참전유공자 연령을 살펴보면 70대 5,536명 80대 1,494명, 90대 1,344명으로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100세 이상 생존자도 26명이나 있었다. 반면 70세 이하의 참전유공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참전유공자를 다루는 기사를 작성할 때면 ‘촉구하다’라는 동사를 단골손님처럼 꺼내게 된다. 잘 알다시피 급하게 재촉하여 요구하다라는 뜻이다. 지금 참전유공자들은 여유가 없다. 물적 여유는 물론 시간적 여유마저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전유공자들에 대한 국가의 대우는 여전히 형편없다. 올해 7월 기준 참전유공자에게 지자체가 지급하는 월별 명예수당은 철원이 40만 원인 반면 원주·강릉·양양은 15만 원에 그치고 있다. 사는 곳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명예수당이 최대 2배 넘게 차이가 나는 실정이다.

지난해에는 소득인정액에서 공제되지 않는 보훈급여가 5% 인상되며 전체 소득 증가로 기초생활수급자 자격 탈락 위기에 놓인 보훈대상자들이 마지못해 보훈급여금을 포기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정부가 국가유공자들의 예우를 위해 인상한 보훈급여가 오히려 독(毒)이 된 꼴이다.

올해 5월22일 본인의 취임식 현장에서 만난 강현오 월남전참전자회 강원자치도지부장은 처음 인사를 나누는 기자의 손부터 덥석 잡고 또렷한 눈빛을 보냈다. 그러면서 “6·25 전쟁과 월남전 참전유공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지역 언론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핏줄 선 지부장의 손아귀는 1970년 비둘기대원으로 베트남전에 파병됐던 당시처럼 단단했다. 1분도 채 되지 않았던 강 지부장과의 악수와 대화를 통해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강원지역 참전유공자들에 대한 합당한 예우가 시급하다는 것을 되새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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