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옷장 깊은 곳에서 외투를 찾아 꺼내 입게 된다.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24일)이 지났다. 올가을 첫 서리는 첫 얼음과 함께 지난 21일 관측됐다. 이날 산간지방 나무에는 상고대가 피고, 밭고랑엔 서릿발까지 돋았다. 설악산에는 눈이 내렸다. 예부터 ‘무서리 세 번에 된서리 온다’고 했으니 날씨가 추워질수록 서리가 강해진다는 뜻이다. 서리는 겨울을 알리는 신호다. ▼서슬 퍼런 추궁이나 엄한 명령을 서릿발 같다고도 한다. 서리가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데 반해 서릿발은 밑에서 위로 솟는다. 땅속 수분이 얼면서 얼음조각이 흙을 밀어 올리므로 식물을 뿌리부터 상하게 한다. 그래서 서릿발이 더 무섭다. 무소불위의 칼날 앞에서는 모두가 서리 맞은 나뭇잎처럼 엎드린다. 그러나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라는 말이 있다. 남을 대할 때 봄바람 같이 부드럽게 하고, 자신을 대할 땐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 하라는 의미다. 정치인이 반드시 가슴에 새겨 둘 말이다. ▼추사 김정희는 세도가 안동 김씨의 일원인 김병학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 말을 한다. “하늘에 기러기 날고 첫서리가 내리는 데다 또 국화철을 만나게 되니, 얼마 전 같은 열기와 번뇌를 생각하면 오늘날 이 서늘바람이 불어줄 줄을 뉘라서 예측했겠습니까. 천기(天機)의 돌고 돎이 이와 같은가 봅니다.” 유교 경전인 ‘주역’에는 “이상견빙지(履霜堅氷至)”라는 글이 있다. 서리가 밟히면 장차 단단한 얼음이 어는 시절이 온다는 뜻이다. 아름다운 단풍이라도 서리를 맞으면 낙엽이 되는 게 세상의 이치다. ▼중국 전국시대 말기에 진나라 재상 여불위가 편찬한 ‘여씨춘추’에는 “한창 잎사귀가 무성할 때는 하루 종일 잎을 따도 여전히 무성하게 돋아나는데, 이것은 식물이 때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을 서리만 내리면 뭇 숲은 모두 낙엽이 진다. 일의 어렵고 쉬움은 일의 크기에 있지 아니하니, 때를 아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구절이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세상이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