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4년도 국가 R&D(연구 개발) 예산을 33년 만에 삭감한 초유의 사태에 지역 연구계도 고사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지방의 R&D 예산은 무려 3분의 2가 줄었다. 정부가 편성한 내년 R&D 예산안 중 비수도권에 집중 투자하는 균형발전특별회계 R&D 예산이 올해 3,460억원에서 내년 1,131억원으로 67.3%(2,329억원)나 감소했다. 전체 R&D 예산 감소 폭이 13.5%인 것을 감안하면 지방 쪽 예산의 삭감 폭은 과도하다. R&D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의 중소·중견기업과 대학교, 연구소 등을 지원해 지역 특성에 맞는 산업을 발굴한다는 취지가 무색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지방시대 선포식에서 지역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라고 했다. 모든 권한을 중앙이 움켜쥐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지역의 R&D 예산 감소는 지방시대를 열겠다는 대통령의 말과도 배치된다.
R&D 예산 축소의 여파는 벌써 나타나고 있다. 강릉원주대와 강원도농업기술원은 지역 농업의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당초 2024년까지 진행하기로 했던 ‘북방지역 사과 재배적지 선정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재배 기술 개발 및 품종 선발’ 연구과제가 조기 종료될 수 있다는 공문을 농촌진흥청으로부터 받았다. 강릉원주대뿐 아니라 도내 각 분야 연구실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이어지면서 교수들은 당장 내년도 대학원생 충원과 연구과제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여기에다 대한수학회, 대한물리학회, 대한화학회 등 주요 기초학문 학회들은 최근 성명을 냈다. “졸속으로 마련된 정책은 미래를 견인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즉, 정부는 오랜 기간 지속적인 노력으로 구축된 기초연구 생태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일방적인 연구지원체계를 전면적으로 재고하라는 것이다.
기초연구는 성과가 느리고 사업화하기도 힘들지만 이 부문의 축적 없이 한국이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없다. 이번 R&D 예산 삭감은 윤석열 대통령의 ‘연구·개발 카르텔’ 한마디에 졸속 추진됐다. 심각한 부작용이 뻔한 예산 삭감은 막아야 한다. 여야는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비상한 경각심을 갖고 미래 먹거리를 지킬 해법을 찾기 바란다. R&D 예산 감축 피해는 대학원 진학을 원하는 학부생, 현 대학원생 그리고 비정규직 연구원에게 집중된다. 연구비 삭감으로 기초과학자를 꿈꾸는 젊은 연구자들이 줄어들면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에 큰 장애가 생기고 결국 피해는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국민 모두에게 돌아올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