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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물가 정책의 정도(正道)

1793년 혁명을 통해 프랑스의 정권을 잡은 로베스피에르의 고민은 우유 가격 안정이었다. 우유 가격의 상승은 민심을 흉흉하게 만들고, 혁명의 당위성마저 부정할 수 있는 소재였기에 그는 강력한 가격통제 정책을 시도했다. 처음엔 서민들이 환호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지나치게 낮은 가격 때문에 우유를 팔아도 사료 값조차 건지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낙농업자들은 젖소를 도살해 버렸다. 이렇게 되자 혁명정부는 다시 억지로 사료 값을 낮췄고 이번엔 사료 업자들이 건초 재배를 중단했다. 손쉬운 정책 수단을 선택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레닌은 “자본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화폐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 말했고 존 M 케인스는 ‘정확한 판단’이라고 평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물가 상황이 그런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엄중한 문제다. 우리 역사상 가장 심각했던 인플레를 잡고 경제를 안정 성장 궤도에 올려놓은 대통령은 전두환이다. 2차 오일 쇼크,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 기록적 쌀 흉작 등 공급 쪽 충격으로 1980~1981년 2년간 56.2%나 오르던 물가를 1983년 이후에는 연간 2% 수준으로 안정시켰다. ▼박 대통령은 1979년 4월16일 모든 물가 규제를 없애고, 물가 안정을 오로지 규제 개혁과 경쟁 촉진 등 시책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인기 없는 정책들을 한 치도 양보하지 않고 우직스럽게 밀고 나가면서 소위 경제 교육을 통해 수요 감축에 온 국민의 협조를 이끌어 낸 것은 전두환의 공이다. ‘고통 분담’이라는 용어가 이때 등장했다. ▼강원지방통계지청의 ‘2023년 8월 강원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도내 물가지수는 113.40(2020년=100)으로 전년 동월 대비 3.1% 올랐다. 물가상승률은 올 5월 3.2%를 기록한 이후 6월 2.4%, 7월에는 1.8%로 2년4개월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지만 3개월 만에 다시 3%대로 재진입했다. 곧 추석인데 서민들의 한숨 소리가 오늘 따라 더욱 크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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