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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 ‘정치인의 단식’

종교적인 단식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에도 단식이 있다. 라마단 단식은 신자들이 단식으로 영혼을 정화해 알라 신에게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불교의 단식은 번뇌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더 고결하고, 더 헌신적인 종교적 삶을 위한 의식이다. ▼고대 아일랜드에는 다른 사람과의 분쟁이 있을 때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그 사람 집 앞에서 단식하는 풍습이 있었다. 한국 역사에도 종종 왕의 폐위에 반대해 식음을 전폐하다가 사망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의 단식은 비폭력·무저항의 상징이다. 단식은 권력층이나 기득권층에 저항하거나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자 충격 요법이었다. 사회적 약자가 밖으로는 저항, 안으로는 각오를 각각 다지기 위한 수단이 됐다. ▼정치권의 단식은 중요한 정치 행위다.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2019년 11월20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철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과 공직선거법 개정 반대를 내세우며 8일간 단식투쟁을 했다. “뜬금없는 단식”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황 전 대표는 2019년 11월11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세월호 특별수사단을 출범시킨 지 9일 만에 단식을 단행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그는 세월호 수사를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이 때문에 당시 황 전 대표는 검찰 수사를 ‘야당 탄압’이라고 규정하기 위해 단식투쟁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황 전 대표는 삭발투쟁과 장외 집회도 이어 갔지만 자유한국당은 2020년 4월 21대 총선에서 패배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식이 5일로 엿새째다. 그의 단식 관련 뉴스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정치인이 정치적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단식이나 삭발을 감행하는 것을 말릴 수는 없다. 하지만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면 오히려 더 큰 비판에 직면하는 결과를 낳는 ‘양날의 검’과 같다. 정치인의 단식에 진정성이 없다면 정치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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