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형 병원에서 수술 보조 로봇이 의사를 도와 정밀 외과수술을 한다. 독신 남성의 집에서는 주인이 스마트폰 문자메시지로 보낸 지시에 따라 로봇청소기가 텅 빈 집을 혼자 청소하고, 맞벌이 부부 가정에서는 각종 멀티미디어 콘텐츠로 무장한 로봇이 아이의 과외 선생님 역할을 한다. 독거노인의 집에서는 실버케어 로봇이 노인의 건강 상태를 수시로 체크하고 재활치료까지 돕는다. 직장 여성이 사무실에서 인터넷으로 주문한 물건이 몇 시간 뒤 무인항공 택배 로봇을 통해 집으로 배달된다. 지능형 로봇이 상용화될 때 펼쳐질 우리의 미래상이다. 이는 지속적인 R&D(연구·개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R&D의 시제는 미래다. R&D 예산은 미래를 새로이 열기 위한 현재의 자원이다. 이 예산이 갑자기 감축돼 논란이다. 정부가 내년도 R&D 예산을 올해보다 16.6%(5조2,000억원) 줄인 25조9,152억원으로 편성했다. 주요 R&D 예산이 감소한 건 2016년 이후 8년 만이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와중에도 증가했던 국가 R&D 예산이 ‘R&D 카르텔’을 질타한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구조조정에 들어간 것이다. ▼R&D 예산은 연구자들이 활약할 무대를 만드는 데 쓰이는 돈이다. 그간의 과학기술 R&D는 소위 ‘추격형’으로 남들이 이뤄 놓은 것을 모방하고 쫓아가는 일이었기에 적은 예산으로도 큰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해야 할 R&D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작업으로, 과거와 같은 환경에선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기적은 반복되지 않는 것이기도 하지만 R&D에는 본래 기적이 없다.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서는 연구자들에 대한 국민의 따뜻한 성원과 충분한 투자가 있어야 한다. ▼연구에 효율성의 잣대를 들이대면 도전적인 과제는 피하고,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과제에 매몰될 수 있다. 일부 비효율의 예산은 당연히 시정돼야 하지만 ‘R&D 카르텔’ 타파가 미래 경쟁력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