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적으로 직업관을 3가지로 분류한다. 그중에서 자신이 선택한 직업이 ‘운명적 직업’이거나 ‘하늘이 내린 직업’으로 생각하는 ‘천직적 직업관’이 있다. 또 지금 하는 일이 보람이나 행복을 느끼기보다는 단지 생계 유지를 위해 일을 하는 ‘생업적 직업관’이 있으며, 죽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노예적 직업관’이 있다.
막스 웨버는 직업의무의 수행은 신의 소명에 의한 것이며, 금욕 정신에 어긋나는 이익 획득은 신의 뜻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직업천계설’을 주장했다. 교사들이 교육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은 막스 웨버가 말했던 신의 소명에 의한 것으로, 일선 교육 현장에서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들은 천직적 직업관의 대표적인 직업군으로 ‘직업천계설’에 속한다. 온종일 한눈팔 시간도 없이 어린 아이들을 지도·관리해야 하는 교육 현장은 늘 긴장의 연속이며, 별정직 박봉에 시달려도 ‘교사’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삼고 있다.
예로부터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했다.
이 말은 중국 제나라 때의 재상이었던 관중(管仲)이 그가 지은 ‘관자’에서 “곡식을 심는 것은 일년지계이고, 나무를 심는 것은 십년지계이며, 사람을 심는 것은 종신지계”라고 한 데에서 비롯됐다. 그러므로 교육은 한 나라의 백년을 좌우할 큰 계획이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백년지대계’를 세우고 있는 일선 교사들의 천직적 직업관이 무너지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교사들의 천직적 직업관의 가치 훼손은 일선 교육 현장을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만든다. 첫째, 교사의 직업을 회피하는 현상으로 우수인력 확보가 어렵다는 것이다. 인재를 양성하는 기관이 우수인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것은 교육의 질적 문제를 야기한다.
둘째, 교사들에 대한 ‘존경심’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성직자들과 함께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는 직업이다. 열악한 근무조건 속에서도 교육에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었던 것은 ‘존경’을 받는다는 자부심이었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교사들은 예비교사 시절부터 천직이라는 사명감과 청운의 꿈을 가진다. 그러나 지금은 그 꿈과 사명감이 사라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것은 자기중심적 사고의 편향성을 가진 몇몇 사회구성원의 상식 밖의 행위로 교사들이 평소에 지녔던 천직의 가치관이 점점 쇠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관점에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이익을 우선시하는 사고 방식을 가진 사회구성원들로 인해 학교라는 공동체마저 해체될 위기에 처해 있다.
1980년을 전후로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양되면서 농촌인구가 도시로 대거 이동하는 현상이 일어났고, 도시의 인구 증가는 △가정교육 기능 약화 △전통가치체계의 상실 △물질만능주의의 만연 △21세기 세계화 추세에 맞는 교육 수립의 지연 등을 심화시키며 청소년의 비행과 탈선이라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괴테는 “쓸모가 없는 존재는 죽은 존재”라고 했다. 또 19세기 독일의 사학가 레오폴트 폰 랑케는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것은 군사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요, 국토의 크기도 아니다. 그것은 도덕적 에너지”라고 했다.
교사들이 천직적 직업관을 가질 때 ‘쓸모없는 존재’를 ‘쓸모 있는 존재’로 만드는 열망이 치솟아 오른다. 일상에서 필요한 학생의 ‘도덕적 에너지’ 또한 일선 교사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누구도 묵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