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The초점]교권·인권 모두 존중받아야

이용훈 영서고 교장 전 태백교육장

40년 교직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세상의 우여곡절을 만났다. 그것이 내면에 쌓여 조금이나마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된 것이 연륜이자 통찰이라는 것도 알았다. 감동하고 누군가와의 대화에 인용할 수 있는 논리와 설득의 지평을 넓혀 준 것도 학교에서 만난 책들과 신문에서 본 글들이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요즘 미디어나 언론은 전통과 위상을 잊은 채 정치적 이념에 편중된 글이 많아 독자의 한 사람으로 난해하다. 그나마 지역신문들은 이념과 관계없이 사실만을 가감 없이 보도하기에 지적 충만한 대중들은 나름대로 해석하고 객관적으로 사고한다. 모처럼 학교와 교육을 걱정해 주는 사회 분위기 속에 교단을 떠나는 마당에 학부모와 교사 모두에게 작금의 현실을 돌아보고 과거 학교 모습을 찾아 함께 공감했으면 한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은 너무나 슬프고 가슴 아프다. 그녀의 죽음으로 세상은 갑자기 교사들이 약자인 양 측은지심이다. 많은 지도자와 언론은 학교가 교사의 엄중한 영역이라는 핑계로 교권을 보호한다며 학생 인권을 문제 삼는다. 여기에 동의하는 교사가 얼마나 있을까 싶다.

교권도 인권도 모두 다 보호되고 존중돼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의 태도를 지적하기보다는 교사들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생각해 보면 스승의 날을 잃어버린 지가 언제인지 모른다. 선생님에게 음료 한 병 주는 것도 불법으로 만든 사회가 상호 불신에 갇혀 사제의 정은 점점 멀어져갔다. 라포(rapport)가 형성되지 않으니 아동들이 말을 듣겠는가. 불행한 젊은 교사의 죽음으로 많은 교사의 비통함은 무너진 교권의 절규다.

교권 침해의 심각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됐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사회적 관심과 자정 노력이 늦은 감은 있지만 다행이다. 하지만 언젠가 또 교사의 부정과 체벌이 주목받는 뉴스가 터지면 교사들은 또다시 마녀가 되고 가해자가 돼 교권은 외면될 것이라는 불안을 떨칠 수 없다.

20~30년 전만 해도 학생들과 선생님은 교외에서 자주 어울렸다. 냇가에서 천렵도 하고 등산도 하고, 특히 토요일 방과 후엔 축구 시합에 짜장면 내기도 여러번 했다. 영월 옥동중에서 학생들과 10여차례 동굴 탐사를 한 적도 있는데 당시 나는 하동면 덤내동굴에서 추락해 13바늘을 꿰맨 적도 있었다. 놀란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 시절이 너무나 즐겁고 재밌다. 그때는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선생님을 매우 대우했고 존중해 줬다. 체벌해도 자기 잘못이라고 용서를 빌던 그 시절의 제자들을 생각하면 지금의 나는 후회스럽고 미안하다.

지금까지 10번의 주례를 섰다. 부탁받은 대부분 제자는 학생부장 재임 때 나를 ‘학주’라 부르며 나를 적대시하던 아이들이다. 졸업하고 나이를 먹고 세상을 만나고 나니 나를 이해한 것 같다. 학교는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기 이전에 인간관계를 통해 협력하고 배려하는 정의를 배우는 놀이터다. 학부모는 부모가 돼야 하고 교사는 스승이 돼야 한다. 그래야 제자를 얻을 수 있다. 지금의 영서고에서도 괜찮은 학생을 많이 만났다. 그 애들이 몇 년 후에 우리들의 제자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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