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법정칼럼]사법, 길을 찾는 여정

여동근 춘천지방법원 영월지원 판사

여행 동호회에서 올해 가을여행을 어디로 갈지 정하려 한다. 어떻게 정할까?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동호회라면 아마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칠 것이다. 먼저 동호회원들 각자가 마음에 둔 장소를 추천하게 한다. 그 뒤 동호회원들 전원이 한데 모여 추천된 후보지 중 어느 곳을 최종 여행지로 선정할지에 관한 토의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동호회원 전원의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그에 따를 것이고, 만장일치가 어렵다면 표결을 거쳐 다수결로 정할 것이다. 국가를 동호회에 빗댄다면, 이러한 의사결정과정이 국회에서 이루어지는 의안 발의·토의·표결 등의 입법 절차에 해당한다.

위 과정을 거쳐 이번 가을에는 버스를 타고 태백산으로 가기로 정했다. 그 다음은? 일단 타고 갈 버스를 예약해야 할 것이고, 그밖에 일정표 작성, 숙소 및 식당 예약 등 각종 실무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실무를 도맡을 책임자를 따로 정해놓지 않는다면, 여행에 필요한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채 여행 당일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실무책임자를 정해서 행정업무를 전담케 해야 일이 효율적으로 처리될 수 있기도 하다. 이처럼 행정은 토론과 타협의 영역인 입법과 달리 책임과 효율의 원리를 토대로 운용된다. 민주국가에서 행정조직을 별도로 두어 거기에 행정권한을 위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여행가는 당일이다. 동호회원들을 태운 버스가 태백산으로 향하던 중 산사태 현장을 맞닥뜨리고서 우회로를 찾다가 길을 잃었다. 이후 한동안 헤매던 버스는 산속에서 갈림길을 마주하였다. 어느 쪽 길이 태백산으로 가는 길인지 어떻게 정해야 할까? 이런 문제를 만장일치나 다수결로 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회원 전원이 왼쪽 길을 태백산 가는 길로 정한다고 해서 그 길이 실제 태백산 가는 길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원들이 아무리 오랜 시간 토의한들, 정확한 정보와 자료가 전제 되지 않는 한 그러한 토의가 올바른 길로의 안내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무조건 동호회장이나 총무가 앞장선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올바른 길을 찾을 확률을 조금이나마 높이는 방법은, 동호회원 중 길눈 밝은 사람을 찾아 그에게 주변 산세를 확인하고 인근 주민을 수소문하는 등 정보를 수집·분석하여 앞으로 나아갈 길을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 동호회원들의 토의가 가미될 수는 있다. 하지만 해당 토의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절차라는 점에서 ‘길눈 밝은 사람’의 지원과 관여를 전제로 하며, ‘어디로 가면 좋을지’를 논하는 입법적 토의와 질적으로 다르다.

필자는 7년 전 판사로 임용될 무렵 ‘왜 거의 모든 민주국가에서 사법적 판단을 국민 또는 그 대표기관인 의회가 아닌 소수의 전문가집단으로 구성된 사법부에 맡기는 것일까?’하고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이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해본 결과가 지금까지의 여행동호회 비유이다. 동호회원(국민)들로부터 그나마 ‘길눈’(법률 전문성) 밝은 사람으로 인정받아 길찾기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종합·분석할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들이 법관이다. 이들이 내리는 판결이 불가침의 신성한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사법적 판단은 ‘어느 길이 맞는 길인지’에 대한 판단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타협이나 다수결의 대상이 아니며, 신속성이나 효율성만이 강조될 대상도 아니다. 법원 판결을 비평할 때 위와 같은 사법의 특성을 고려해주시기를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부탁드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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