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는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입이 너무 오래 열려 있으면 공격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이 당하는 시련의 대부분은 입에서 비롯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아낀다.” 말의 중요성을 이르는 경구다. 법정 스님은 이렇게 일갈했다. “내가 두 귀로 들은 이야기라 해서 다 말할 것도 못 된다. 들은 것을 들었다고 다 말해 버리고 본 것을 보았다고 말해 버리면 자신을 거칠게 만들고 나아가서는 궁지에 빠지게 한다. 현명한 사람은 남의 욕설이나 비평에 귀 기울이지 않으며 또 남의 단점을 보려고도 않으며 남의 잘못을 말하지도 않는다. 모든 화는 입으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입을 잘 지키라고 했다. 맹렬한 불길이 집을 태워 버리듯이 입을 조심하지 않으면 입이 불길이 되어 내 몸을 태우고 만다. 입은 몸을 치는 도끼요. 몸을 찌르는 칼이다. 내 마음을 잘 다스려 마음의 문인 입을 잘 다스려야 한다. 앵무새가 아무리 말을 잘한다 하더라도 자기 소리는 한마디도 할 줄 모른다. 사람이 아무리 훌륭한 말을 잘 한다하더라도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예의를 갖추지 못한다면 앵무새가 무엇이 다른가.” 요즘 유래 없는 무더위에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의 말이 불길이 돼 뭇사람들의 가슴을 새까맣게 태우고 있다.
인간 기본가치 망각한 실언
김 위원장이 지난 7월 30일 청년들과의 좌담회에서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1대1로 투표해야 하느냐”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고령자가 선거에서 젊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1표를 행사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것이다. 숱한 희생과 고통의 역사를 관통한 끝에 인류가 쟁취해낸 존엄과 평등의 가치에 바탕한 ‘1인1표’제를 새털만큼 가볍게 이렇게 말해도 되는 것인가. 김 위원장이 해명 과정에서 한 말이 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3일 대한노인회를 방문해 자신의 노인 폄하 발언에 대해 사과하는 과정에서 “시댁 어른들도 남편 사후에 18년을 모셨다”고 말하며 노인을 비하할 의도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후 온라인상에서 김 위원장의 시누이라고 밝힌 인물이 해당 발언을 ‘거짓말’이라고 주장하고 나섰고, 김 위원장의 아들도 반박글을 올렸다. 김 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의 혁신 동력은커녕 스스로 혁신 대상이 돼가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인의 말은 중요하다. 말이 곧 정치이기 때문이다. 말이 곧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는 툭하면 노인 폄화 발언이 튀어 나와 파장을 일으킨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60대 이상은 투표 안 해도 괜찮다. 집에서 쉬셔도 된다”고 말했다가 선거를 망쳤다. 같은 해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은 “50대에 접어들면 멍청해지고, 60세가 넘으면 책임 있는 자리에 있지 말아야”라고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든다는 것은 또 다른 지혜의 축적이기도 하다. 체력은 나이가 들수록 쇠퇴하지만 정신력은 다르다. 삶에서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혜는 노년에 더 발달한다.
막말로 노인들을 폄훼하나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나는 이번 선거전에서 나이를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상대가 어리고 경험이 없다는 점을 공격하지 않을 생각입니다”라는 재치 있는 TV 토론으로 역대 최고령인 73세에 재선됐다. 그러나 늙음은 피할 수 없다. 즉, ‘시간의 흐름’보다 세상에 더 확실한 것이 어디 존재하나. 무심하게 제 갈 길을 가는 시간을 당할 자 아무도 없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잡아보겠다던 진시황은 불로장생약이라 믿은 수은에 중독돼 사망했다. 청춘의 푸르름과 비교할 때 노년의 잿빛은 더 도드라진다.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영화 ‘은교’ 속 명대사 그대로다. 열정적이고 성공적인 젊음을 보내도 힘겨운 노년의 삶을 피할 수는 없다. 마음의 상처가 되는 막말로 더 이상 이나라 노인들의 삶에 덧칠을 해서는 곤란하다. 세치의 혓바닥이 여섯자의 몸을 살리기도하고 죽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