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호등]강원특별도의 ‘자유와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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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 정치부 차장

옛 설화에 금강산으로 향하던 울산바위는 설악산에 눌러앉았다. 원래 울산바위가 있던 지역의 원님은 소유권을 주장하며 세금을 내라고 독촉했다. 설악산 신흥사의 동자승은 새끼를 꼬아 바위를 동여맨 뒤 불로 태우는 묘안을 짜내 ‘산세분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 국민 누구나 아는 설악산 울산바위의 부래(浮來) 전설이다. ‘묶을 속(束)’자와 ‘풀 초(草)’자를 쓰는 속초(束草)라는 지명이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환경은 누군가의 의도가 아닌 자연에 의해 저절로 창조됐다. 하지만 부래 전설에는 난데없이 세금이 등장한다. 설화가 만들어진 시점,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자연을 지키고 보전하는 주민들의 희생을 오히려 수탈의 대상으로 본 행태가 담긴 것이다. 조물주가 금강산 모집을 공고했던 수천년 전, 또는 부래 전설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수백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 같은 인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강원도는 근대화 이후 또는 그 이전부터 환경, 군사·안보, 산업 등의 측면에서 국가 발전의 동력으로 작동해 왔다. 하지만 경제적·사회적·문화적으로는 오히려 강원도에 대한 수탈적인 시스템이 고착화됐다. 강원도는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 청정환경을 지키기 위해, 수도권 상수원을 지키기 위해 희생과 책임을 강요받았다. 이는 규제라는 물리적 수단으로 도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 42개 개별법에 따라 강원지역에 적용되는 군사·산림·환경·농업 규제는 2만7,848㎢로 강원도 전체 면적의 1.7배에 달한다. 이로 인한 연간 생산 손실액은 29조원대로 추산된다. 규제는 강원도가 낙후를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을 낳았다. 11일 출범하는 강원특별자치도는 이 같은 수탈적 시스템에 기인했다. 강원도의 특별한 희생에는 각별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그리고 지난달 말 강원특별자치도의 권한과 특례를 담은 ‘강원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84개 조항으로 이뤄진 특례를 확보하며 각별한 보상과 지역 발전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입법 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조항은 ‘제64조 환경영향평가 등에 관한 특례’였다. 민간사업의 환경영향평가 권한을 환경부에서 강원특별자치도로 이양하는 막강한 특례다. 이를 두고 난개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난개발은 국내 첫 특별자치도인 제주에서도 오랫동안 첨예한 논쟁을 빚어 왔다.

다만 강원특별법은 권한과 동시에 책무도 규정하고 있다. ‘제59조 탄소중립 녹색성장 중점 자치도의 조성’은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과 녹색성장 실현, 이를 위한 국가의 행·재정적 지원, ‘제60조 자연환경 보전·관리의 기본 방향’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와 지속 가능한 발전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법률 자체만 본다면 강원도의 우수한 생태자원에 대한 보전과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두 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를 어떻게 적용하고 활용할지가 관건이다. 개발과 활용을 위한 특례와 자연환경에 대한 적극적 보전 책무를 규정한 특례가 ‘상호보완’이 될지, ‘모순’이 될지 순전히 강원도의 몫이자 역할로 남은 것이다. ‘자유와 책임’은 강원특별법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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