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권혁순칼럼]강원도 ‘절망의 길’ ‘희망의 길’

낙후, 소외, 한계. 38선 등은 강원도의 대명사
영월~삼척 고속도로 경제성 낮게 나와‘비상’
전국의 지역끼리 연대를 통해 힘을 키워나가야

강원도 ‘절망의 길’ ‘희망의 길’

낙후, 소외, 한계. 38선, 6·25전쟁, 휴전선, 군부대 등. 이는 강원도를 지칭하는 대명사다. 강원도는 인구는 적고 자생력이 약하다보니 늘 지척 거리인 서울 등 수도권에서조차 접근성이 무척 떨어지는‘아주 먼’ 변방으로 치부돼 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민의 삶도 고달 펐다. 1970년대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며 지독한 가난에 찌들어 살았던 주민들은 정든 고향을 등지고 너도나도 보따리를 싸 서울로 떠났다.

 인구는 갈수록 줄어 들어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본격화된 저출산 풍조까지 겹치며 1970년 186만6,928명에 달했던 도내 인구는 2022년 기준 153만6,487명이다. 한국 산업화의 중심축 역할을 담당했던 태백 삼척 영월 정선 등 탄광지역은 한때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1930년대부터 시작된 석탄산업은 197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에 강행된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으로 탄광촌은 폐허가 됐다. 41개 탄광을 끼고 시 승격까지 이뤘던 43년 전 태백시 인구는 11만 4,000명이었다. 90년대 석탄 산업이 저물며 뚝뚝 떨어지던 인구는 결국 3만 명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스스로를 ‘막장 인생’이라고 부르던 탄광지역 주민들이 상가를 철시하고, 철도를 가로 막고 목숨을 건 투쟁으로 생존을 위해‘카지노장’까지 유치해야 했을 정도로 주민들의 생활은 핍박했다.

강원도는 오지가 많다. 우리나라 국토의 70%가 산지라고 하지만 강원도는 유독 험준한 산이 많다. 예로부터 왕래가 쉽지 않았음은 당연한 결과였다. 조선시대에는 한양에서 강원도 초입인 원주까지만도 말을 타고 꼬박 이틀이 걸렸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평지가 꽤 있지만 원주부터는 가파른 산이 가로막고 있어 말로 가기도 힘들었다. 그야말로 ‘절망의 길’이다. 세조가 사육신 사건 후 조카 단종을 강원도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영월로 유배 보낸 것도 첩첩산중으로 내몰아 다시는 복위를 도모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단종이 첫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에 도착한 것은 한양을 떠난 지 엿새 만이었다고 한다. 강원도의 현재는 어떠한가. 과거의 어느 시점과 어떻게 다르며 무슨 변화가 있는가.

 국가균형발전 시늉만 내

춘천과 속초를 연결하는 동서고속화철도는 1987년 제13대 대선 당시 노태우 후보의 공약으로 시작돼 35년의 세월이 흘렀다. 대선 후보들이 먼저 착공하겠다고 했다. 그것도 8번이나 약속했던 이 고속화철도는 이제 겨우 착공에 들어갔다. 정치권과 정부는 35년 동안 강원도 주민들을 철저히 우롱했다. 돌이켜보면 역대 정부는 강원도 SOC 사업에 너무나 인색했다. SOC건설에 말로는 국가균형발전이지만 공허했다. 영동고속도로 4차선화할 때도 그랬고, 동해고속도로 삼척연장도 마찬가지였다. 인구가 적고 면적은 넓어 경제성의 잣대로 재단하면 강원도에서는 어떤 SOC사업도 할 수가 없다. 태백 정선 영월 등 강원 남부권 최대 숙원사업인 동서6축 영월~삼척 고속도로가 경제성에 비상이 걸렸다. 즉, 경제성이 턱없이 낮게 책정된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국가 고속도로 건설계획에 중점사업으로 반영되면서 착공이 눈앞에 다가오는 듯했지만 강원지역 SOC사업의 고질적 아킬레스건인 B/C(비용대비편익)에 또다시 발목이 잡히는 모양새다. 소설가 이외수는 그의 수필집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에서 길에 대해서 이렇게 일갈했다. “길은 떠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정부는 강원도 주민의 SOC에 쌓인 소외와 낙후에 대한 원망의 소리를 언제까지 귀 닫고 있을 텐가. 이제 ‘지역의 길’은 지역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지역은 뭉쳐야 한다. 분권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서로 흩어져 제살깎기식 경쟁을 하다간 미래까지 잃어버릴 수 있다. 더 넓어져만 가는 생활권역과 행정권역을 인정하고 연대를 통해 힘을 키워야 한다. 그게 지역이 살아가는 ‘희망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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