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

[메트로폴리탄 뉴욕] 10. 언제 어디서 보아도 아름다운, 브루클린 브리지

뉴욕은 맨해튼을 비롯해 바다와 섬으로 이루어진 5개 자치구로 이루어져서인지 다리가 참 많다. 뉴욕시에 있는 다리만 2,098개라고 하니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가 모르는 다리도 참 많은 것이다. 그런데 그 많은 다리 가운데서도 유독 돋보이는 다리가 하나 있다. 바로 브루클린 브리지이다. 뉴요커들이 ‘위대한 다리(the Great Bridge)’라고 부르는 유일한 다리, 뉴욕을 묘사하는 그림, 사진, 글 모든 분야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다리. 그게 바로 브루클린 브리지이다. 처음 뉴욕을 찾은 사람도 한눈에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브루클린 브리지는 아름답다. 아름답다는 표현 이외에 다른 어떤 수식어가 떠오르지 않을 만큼 완벽하다. 지금도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오가는 수많은 차량과 사람이 이용하는 이 다리가 지금으로부터 무려 140년 전인 1883년에 개통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누구나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1885년 브루클린 브리지(1883년 개통 직후)자료: New York City, Yesterday & Today(1990)

뉴욕에 많은 랜드마크 건축물이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이 계속 높아지는 건축물은 브루클린 브리지가 최고가 아닌가 싶다. 필자가 뉴욕살이를 시작한 2015년에 비해 뉴욕을 떠난 2018년에 이곳을 찾는 관광객 수가 훨씬 더 늘었었고, 랜드마크로서의 존재감도 계속 우상향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지금 그 인기는 더해졌을 것이다. 다시 말해 예전에는 뉴욕을 찾은 관광객들이 들를 수도, 안 들를 수도 있는 그저 그런 곳이었다면, 지금은 반드시 들러보아야 할 필수코스가 되었다는 말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최근 들어 브루클린이라는 동네 자체가 힙한 젊은이들의 성지(聖地)로 크게 떠올랐고, 이렇게 힙한 브루클린으로 가장 빨리 접근할 수 있는 다리가 이곳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맨해튼의 전체적인 풍광을 가장 멋있게 볼 수 있는 지역이 브리지 바로 건너편인 브루클린 하이츠(Brooklyn Heights)라는 점, 그리고 브루클린 브리지가 시작되는 로어 이스트 지역이 예전에 비해 훨씬 안전해졌다는 점 등이 그 이유이다. 실제로 70~80년대에 뉴욕을 들렀던 사람들은 당시 위험해서 쳐다보지도 않았던 이 다리가 이제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가 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세월이 지날수록 빛을 발하는 이 다리의 실용적이고도 예술적인 아름다움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 생각한다.

맨해튼 로어 이스트의 뉴욕시청공원(City Hall Park)과 이스트강(East River) 건너 브루클린 하이츠를 잇는 이 다리는 길이 1,833.7m, 너비 25.9m, 높이(주탑) 82.9m에 달하는 현수교(suspension bridge)이다. 다리 가운데 네오 고딕양식의 두 개의 주탑이 우뚝 서 있으며 여기에 수없이 많은 강철 케이블이 연결되어 다리를 지탱해 준다. 다리가 개통된 얼마 후 오드럼(Robert E. Odlum)이라는 모험가가 다리에서 맨몸으로 뛰어내리는 실험을 했는데, 결국 입수한 지 45분후 내출혈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만큼 다리가 높다는 뜻이다. 1903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였으며, 한 때 세계 건축물중 8대 불가사의중 하나로 불리기도 하였다. 독일 건축가 존 뢰블링(John A. Roebling)과 아들 워싱턴 뢰블링(Washington Roebling) 부자가 설계하고 건축하였는데, 이들의 독특한 건축기법은 후에 홀랜드 터널(맨해튼과 저지시티를 잇는 허드슨강 하저 터널)과 현지 한국인 사이에 흔히 ‘조다리’로 불리는 조지워싱턴 브리지(맨해튼과 뉴저지를 잇는 허드슨강 현수교)에도 영향을 주었다. 다리는 차량과 마차 등이 다니는 아래층과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윗층, 2층 구조로 설계되고 건축되었다. 아래층 교에 지금은 많은 차량들이 자유롭게 달리고 있지만 1944년까지는 교량용 고가 철도가 시속 40마일로 운행되었다고 한다.

공사중인 브루클린브리지

처음으로 뉴욕과 브루클린간 다리를 구상하고 설계한 존 뢰블링은 안타깝께도 다리가 막 착공된 1869년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고, 그의 아들 워싱턴 뢰블링이 그 뒤를 잇는다. 부친보다 더 주도면밀한 성격을 가졌던 워싱턴 뢰블링은 실제 다리가 만들어지는데 최고책임자로서 결정적 기여를 했지만 아버지의 불행을 이어받았는지 1870년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 브리지 주탑을 해저 바닥에 박는 잠함(caisson) 공사를 하던 도중 사고로 평생 불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워싱턴 뢰블링은 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임무를 다하는데, 현장에 나가지 못하는 대신 그의 아내(에밀리 뢰블링)에게 편지를 써서 현장 엔지니어에게 지시하는 방식으로 공사를 진행한다. 현장을 잘 보지도 못하고 편지로만 교신하면서 10여년간 공사를 마무리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에 대해선 지금도 논란이 남아있다고 한다. 착공부터 완공까지 무려 14년이 걸렸고, 공사 도중 설계자의 사망과 최고책임자의 사고, 20여명 인부의 사망, 각종 부패스캔들로 얼룩진 이 거대한 역사는 결국 1883년 5월 전 미국을 들썩이게 할 만큼 대단한 축하 개통식을 개최하며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이후 워싱턴 뢰블링은 은퇴하여 뉴저지 시골에서 은둔생활을 하는데, 온갖 성공과 불행이 교차했던 인생이었지만 1929년 89세의 나이로 눈을 감을 때까지 이 세기적 건축물의 완성자로서의 영광 하나만으로도 축복받은 인생이었다.

현재의 브루클린브리지

브루클린 브리지는 수없이 많은 케이블로 연결된 현수교여서인지 실제 다리를 걷다 보면 마치 출렁거리는듯한 착시(실제로는 끄떡없다)가 느껴진다. 이 다리가 특히나 매력적인 이유는 다리 중간쯤에서 맨해튼을 바라볼 때 전경이 몹시도 아름답기 때문인데, 우리가 흔히 보는 맨해튼 전경 사진이나 달력 등은 거의 대부분 이 브리지 위나 다리 건너편 브루클린 하이츠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브루클린 쪽으로 다리를 건너면 가까이 우리에게 익숙한 덤보(DUMBO)가 보인다. 뉴욕 부동산업자들이 ‘맨해튼브리지끝단 아래지역’(Down Under the Manhattan Bridge Overpass)이라고 부르던 것이 지역명칭이 된 곳인데, 영화 ‘원스 어판어타임 인 어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의 포스터 배경으로도 유명해 관광객들이 꼭 사진 한 컷씩은 찍고 가는 곳이다. 참고로 ‘덤보’의 브리지는 브루클린 브리지가 아니라 그 옆의 맨해튼 브리지이다. 덤보 지역 부근에는 뉴욕에서 알아주는 피자집(그리말디스 피자, 쥴리아나 피자)들이 여러 곳 있어 브리지를 구경한 후의 허기를 달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브루클린_피자

이 브리지의 또 다른 특징은 낮에 보는 모습과 밤에 보는 모습이 제각기 다른 매력을 뽐낸다는 것이다. 낮에는 당연히 맨해튼 전경을 즐길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인데, 사람들로 붐비는 낮보다는 이른 아침, 특히 느긋한 일요일 아침 시간을 추천하고 싶다. 늦은 밤에도 이곳은 브리지를 즐기는 관광객들이 몰려 전혀 위험하지 않다. 필자의 경우 낮보다는 밤의 브루클린 브리지가 기억에 많이 남는데, 멀리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는 맨해튼 남쪽 바다 위를, 마치 하늘에 떠 있는 양 구름 속을 걷는 느낌을 받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서 출렁거리는 듯한 다리에 서서 맨해튼을 바라보며 밤이 주는 아늑함을 마치 꿈결처럼 느끼던 그 밤의 정경은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 옆에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이 함께한다면 이 편안하고도 특별한 경험은 더더욱 좋은 기억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최재용 한국은행 강원본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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