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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찰청 "이태원 참사 발생 1시간 25분 지난 밤 11시40분에 기동대 현장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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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본 514명으로 증원…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 1개팀 등 13명 추가 투입

사진=연합뉴스

34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태원 압사 참사' 당시 경찰 기동대가 사고 발생 1시간25분이 지난 오후 11시40분 처음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파악됐다.

6일 서울경찰청이 더불어민주당 이태원 참사 대책본부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9일 오후 10시 15분께 사고 발생 이후 모두 5개 경찰 기동대가 투입됐다.

현장에 처음 도착한 건 11기동대로 사고 발생 1시간2분 뒤인 오후 11시17분 용산서로부터 출동 지시를 받고 23분만인 오후 11시40분 이태원 현장에 도착했다.

11기동대는 사고 당일 용산 일대에서 열린 집회 관리에 투입됐다가 집회가 끝난 뒤인 오후 8시 40분부터 용산 지역에서 야간·거점시설 근무를 이어갔다.

종로 거점과 여의도 거점에서 각각 야간 근무를 수행하던 77기동대와 67기동대는 오후 11시33분, 오후 11시50분 서울경찰청 경비과의 출동 지시를 받았다.

77기동대는 출동 지시 17분 만인 오후 11시50분, 67기동대는 이튿날 0시10분 지시 20분 만에 현장에 투입됐다.

서초 거점에서 근무하던 32기동대는 오후 11시51분 지시를 받고 이튿날 0시30분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외교 시설에서 근무 중이던 51기동대는 이튿날 오전 1시14분에야 출동 지시를 받고 19분 뒤 현장에 투입됐다.

사진=연합뉴스

참사 당일 이태원 일대에서는 오후 6시께부터 압사 우려 112신고 등 위기징후가 지속적으로 포착됐다. 그런데도 기동대 투입이 지체된 이유는 현장과 상황실에 근무한 경찰 인력이 사태에 안일하게 대처한 데다가 지휘부 보고마저 늦어졌기 때문이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사고 발생 1시간21분 뒤인 오후 11시36분 이임재 당시 용산경찰서장으로부터 최초 보고를 받고 상황을 파악했다. 8분 뒤인 밤 11시44분 서울경찰청 경비과장에게 가용부대를 신속히 투입하라고 지시했다.

김 청장이 경비과장에게 이같은 지시를 내리기 전까지 출동지시를 받은 기동대는 2개 부대뿐이었다. 이 가운데 1개 부대는 이때까지 현장에 도착하지도 못했다.

참사 당일 저녁 5개 기동대는 모두 삼각지역사거리∼남영역 구간에서 열린 촛불전환행동 집회에 투입됐다. 오후 8시25분께 집회가 모두 끝난 뒤 각각 맡은 거점과 시설에서 야간근무를 했다.

앞서 지난 29일 오후 10시 15분께 이태원 골목에서 발생한 압사 참사로 사망 156명, 부상 191명 등 총 34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망자 중 130명은 내국인, 26명은 이란, 중국, 러시아 등 14개국 외국인이다.

사망자를 성별로 보면 남성이 55명, 여성이 101명으로 파악됐다. 연령별로는 20대가 104명으로 가장 많고, 30대 31명, 10대 12명, 40대 8명, 50대 1명 등이다.

부상자 중 중상자는 33명, 경상자는 158명이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경찰은 이날 이태원 참사 특별수사본부(특수본)에 박찬우 경찰청 범죄정보과장(총경) 등 13명을 추가로 투입했다고 밝혔다.

박 총경과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 1개 팀 6명 등 수사인력이 합류하고 김동욱 서울 노원경찰서장(총경)이 대변인으로 임명됐다.

특수본은 국민적 관심이 큰 상황을 감안해 인력을 확대하고, 언론과 국민에 관련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전했다.

특수본은 이번 충원으로 전체 514명의 대규모 수사조직이 됐다. 본부장은 손제한 경남 창원중부서장(경무관)이 맡고 있다.

특수본은 수사의 독립성을 보장받는다. 본부장은 상급자 지휘·감독을 받지 않고 수사해 결과만 보고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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