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교대 교정에는 동요 ‘과수원 길’을 작곡한 김공선 선생의 노래비가 세워져있다. 북강원도 고성 출신으로 춘천교대 전신인 춘천사범을 3회로 졸업했다. 그가 1972년에 작곡한 ‘과수원 길’은 육칠십된 세대들도 편히 부를 수 있는 동요지만, 자칫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만 다루어질 뻔했던 노래였다. 하지만 이 동요를 ‘서수남과 하청일’ 두 가수가 불러 단숨에 국민동요로 등극케 했다. 이 노래를 작곡한 김공선 선생은 5백여 곡의 동요를 유산으로 남기고 2014년 별세했다.
빛고을 광주에서는 해마다 중국 3대 혁명음악가 정율성을 기리는 ‘정율성 음악축제’가 열린다.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난 정율성은 일제강점기 중국으로 귀화한 특이한 경우의 작곡가이다. 그가 작곡한 ’팔로군 행진곡‘은 훗날 ‘중국인민해방군가’로 채택됐다. 해방 직후에는 한동안 북한으로 귀국해 ‘조선인민군행진곡’ 등을 작곡하며 북한 체제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중국 건국 60주년 행사에서 ‘건국에 공헌한 영웅 100인’ 가운데 여섯 번째에 기록된 국민영웅으로 추앙되었다. 모든 이들이 인지하고 있듯이 음악은 ‘소리(音)’를 소재로한 예술이기에 그 속성의 가치는 시간이다. 회화나 조각과 달리 음악은 시간 예술이므로 작곡된 음악을 연주하지 않거나 연주한 소리를 기록해 놓지 않으면 생명력을 잃고 만다. 아무리 선율이 뛰어나고 흠결없이 작곡된 음악이라도 연주되지 않고 녹음으로 남기지 않으면 그 작품은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작곡가 이건우의 작품도 자칫 그럴 뻔했던 상황이었다. 다행히 한국가곡연구소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묻힐뻔했던 그의 작품이 음반으로 구현되었다.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프라노 서예리와 국내 정상의 바리톤 정록기가 이 작업에 참여해 2019년 세상에 내놓은 음반이 '다시부르는 노래, 이건우 가곡'앨범이다. 그런데 이 앨범 자켓 하단에「북으로 간 작곡가 이건우 탄생 100주년 기념」이라는 부제가 표기돼 있다. 이른바 월북(越北) 작곡가란 의미로 쓰여진 표현이다.
월북작곡가 이건우는, 1919년 강원도 삼척 원덕에서 태어나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해 동경고등음악원에서 공부한 엘리트 음악가이다. 스물두살 때 일본 마이니치 신문사 주최 작곡 공모에 2위 입상하고, 2년 후 요미우리 신문사 주최 콩쿠르에 교향시를 출품해 역시 2위 입상했을 정도로 비범한 작곡가였다. 방송인 김세원의 아버지이기도 한, 당시 조선 제일의 작곡가 김순남과 쌍벽을 이루던 이건우는, 해방 직후 강릉여고에서 잠시 교편도 잡았었다. 그러던 그가 어떤 심경의 변화인지 서울로 근거지를 옮겨 김순남 등과 어울리며 소위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음악을 추구한다는 명분 아래 이념의 늪에 빠지게 된다. 그로 인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으나 한국전쟁 직후 출감하여 결국 이념을 쫓아 북한으로 아예 거처를 옮겼다. 과거 반공을 국시(國是)로 삼던 엄혹한 시절에는 이건우란 이름조차 감히 입에 올릴 수 없던 때가 있었다. 1988년 이후, 그러한 조치들이 완화되어 이젠 그가 작곡한 노래를 듣고 부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월북 작곡가 이건우가 남긴 김소월·정지용·박세영의 시에 선율을 붙인 빛나는 가곡들은 한국적 정서가 너무 진해 처연하기까지 하다. 이제 빛바랜 이념논쟁은 접어두고, 늦었지만 역사 속에 묻혀있던 위대한 작곡가 이건우를 소환(召喚)하는 일에 뜻을 모아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