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보수냐 진보냐, 강남에 사느냐 안 사느냐 등으로 '편 가르기'기준을 삼고 있다. 하지만 중세 말과 근대 초 서양에선 문명인이냐 야만인이냐로 나누는 게 보통이었다. 세련된 도시인들은 가축과 섞여 사는 시골사람들을 경멸했다. 하지만 만찬 때는 죽은 짐승, 산 짐승이 식탁 위아래에 즐비했다. 음식 부스러기와 고기 뼈, 기름에다 개와 고양이 배설물까지 범벅돼 역겹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지지에 대해 “대부분 저학력 빈곤층·고령층”이라고 말했다가 비판이 제기되자 삭제하고 사과했다. 또 민주당 선대위 기본사회위 공동위원장인 최배근 건국대 교수는 공동상임선대위원장으로 선임된 우주산업 전문가인 조동연 서경대 군사학과 조교수 및 미래국방기술창업센터장과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된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의 사진을 나란히 올리고 '차이는'이라고 했다가 논란을 빚었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분열과 갈등을 부채질하는 '편 가르기'가 횡행하고 있다. 정치·사회적 갈등이 컸던 2004년 교수신문이 선정한 사자성어는 당동벌이(黨同伐異)였다. 옳고 그름은 따지지 않고 뜻이 같은 무리끼리는 서로 돕고 그렇지 않은 무리는 배척한다는 의미다. 요즘 이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정치가 회사 대 노조, 정규직 대 비정규직, 부자 대 서민, 강남 대 비강남, 임대인 대 임차인, 그리고 조국 대 반(反)조국으로 편을 갈랐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때다. ▼스푼에서 도시까지 새로운 미학으로 생활세계를 재창조하고자 했던 바우하우스의 창시자 발터 그로피우스는 좋아하는 색을 묻는 질문에 “색색 가지 모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여러 색의 조화를 귀하게 여겼던 그였기에 클레, 칸딘스키 같은 개성 강한 여러 거장을 한 지붕 아래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두 색만으로는 무지개도, 색동저고리도 만들 수 없다. 때때로 정치는 이 평범한 진리를 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