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탁(信託)은 말 그대로 '믿고(信) 맡긴다(託)'는 뜻이다. 영어로는 'Trust'라고 하는데 이는 '신뢰'라는 뜻이며, 독일어로는 'Treuhand'라고 하는데 이는 '충실한(Treu) 손(Hand)'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각국에서 신탁은 맡기는 자(위탁자)와 맡는 자(수탁자) 사이의 신뢰관계를 예정하고 있다. 필자는 재판연구원으로서 민사사건을 검토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신탁이 빈번히 사용되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러나 신탁이라는 용어나 그 구조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음에도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그 법적 구조나 이를 규율하는 법제도가 잘 설명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신탁은 “신탁을 설정하는 자(위탁자)와 신탁을 인수하는 자(수탁자) 간의 신임관계에 기하여 위탁자가 수탁자에게 특정의 재산을 이전하거나 담보권의 설정 또는 그 밖의 처분을 하고 수탁자로 하여금 일정한 자(수익자)의 이익 또는 특정의 목적을 위하여 그 재산의 관리, 처분, 운용, 개발, 그 밖에 신탁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행위를 하게 하는 법률관계”로 정의된다(신탁법 제2조).
즉, 신탁은 통상 위탁자, 수탁자, 수익자라는 3명의 당사자에 의한 삼면관계다. 거칠게 말하면 위탁자는 수탁자에게 특정한 재산(신탁재산)을 맡기고, 수탁자는 수익자의 이익을 위해 그 재산의 관리, 처분, 운용 등을 하며, 수익자는 수탁자에 대해 수익권을 가진다.
신탁이 사용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신탁재산의 독립성'은 그 주된 이유 중 하나다. 즉, 신탁재산은 위탁자나 수탁자의 책임재산으로부터 모두 독립된다. 첫째, 위탁자의 채권자는 원칙적으로 신탁재산에 대해 강제집행 등을 할 수 없고(신탁법 제22조 제1항) 신탁재산은 위탁자의 파산재단을 구성하지 않는다. 둘째, ①수탁자의 채권자는 원칙적으로 신탁재산에 대해 강제집행 등을 할 수 없으며(신탁법 제22조 제1항), ②신탁재산은 수탁자의 상속재산에 속하지 않고 수탁자의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신탁법 제23조), ③신탁재산은 수탁자의 파산재단 등을 구성하지 않는다(신탁법 제24조).
'담보신탁'은 채무의 담보를 위해 위탁자가 채권자를 수익자로 하여 신탁재산(통상 부동산)을 수탁자에게 양도하고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수탁자가 신탁재산을 매각해 그 매매대금으로 채권자인 수익자에게 변제하며 남은 것은 위탁자에게 반환하는 내용의 신탁이다. 대법원은 신탁재산의 독립성을 근거로 위탁자가 도산하더라도 수익자의 수익권에는 영향이 없다고 하여 이른바 '도산절연'을 인정한다. 이와 유사한 저당권이 위탁자의 회생절차에 복종하는 회생담보권으로 변경된다는 점에서 담보신탁은 저당권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는 담보신탁이 활발히 사용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이해되고 있다.
'유언대용신탁'은 위탁자가 생전에 설정하는 것으로 수익자가 될 자로 지정된 자가 위탁자의 사망 시에 수익권을 취득하는 신탁 또는 수익자가 위탁자의 사망 이후에 신탁재산에 기한 급부를 받게 되는 신탁이다(신탁법 제59조 제1항). 즉, 신탁을 이용해 유언으로 재산을 처분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가 발생하도록 하는 것이다. 유언대용신탁과 유류분의 관계에 대해 논란은 있으나, 최근 유언대용신탁은 유연하게 재산 승계를 설계하거나 신탁재산의 독립성을 활용해 유류분 제도를 우회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