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변한 공연장 없던 시절
대중문화 접할 유일한 곳
근대문화공간 선정 기대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 친구여….”
1988년 창사특집 가곡의 밤 마지막 무대에서 테너 박인수가 두 번째 커튼콜로 부른 노래는 조용필의 '친구여'였다. 성악가가 공개된 무대에서 대중가요를 부른다는 것이 당시로서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잠시 웃음이 이는가 싶지만 객석은 곧 그의 음악에 빠져들었다.
사실 테너 박인수처럼 논란의 중심에 섰던 성악가도 흔치 않을 것이다. 서울대 교수이자 성악가였던 그에게 악재가 연이어 터지는데 대중가수인 이동원과 듀엣으로 발표한 '향수' 때문이었다. 당시 성악계는 발칵 뒤집혔다. 클래식음악을 모독했다며 이단아 취급까지 당해야만 했다. 1990년의 일이다. 지금이야 국민적인 애창곡으로 사랑받고 있지만 당시의 분위기는 딴판이었다. 공전의 히트를 치게 되는 향수는 1990년 중반을 접어들면서 인기가요 프로그램이던 KBS의 열린음악회에 성악가를 최초로 출연하게 만든 계기가 된다.
필자가 박인수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방송사 편성부장 시절, 'MBC 가곡의 밤' 연출을 맡으면서 본사의 송창의 프로듀서를 통해서였다. 6년 동안의 행사를 박인수 교수와 협의하며 그렇게 이끌어 왔다. 변변한 공연장이 없던 시절에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대중문화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으니 영화 상영은 물론 가곡의 무대도 그곳이었고 '1인 창무극 공옥진' 공연도 아카데미극장이었다. 실로 전설 같은 얘기라 하겠다.
원주에서 극장문화가 융성했던 시기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의 중앙동에 시공관극장이 가장 먼저 문을 열고, 해를 거듭하며 아카데미극장, 원주극장, 문화극장 그리고 군인극장이 개관되면서 영화관으로서의 대중문화를 보급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그러던 것이 텔레비전의 보급과 복수 스크린을 갖춘 멀티플렉스 영화전용관이 등장하던 200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단관극장의 운명도 쇠락의 길을 걷게 되는데, 아카데미극장 역시 2006년 문을 닫기에 이른다. 시공관극장이 헐리고 문화극장, 원주극장, 군인극장이 사라졌다. 이런 시련을 겪으면서도 아카데미극장만은 지금까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다행한 일이다.
얼마 전, 근대문화유산을 지키려는 지역 향토사학자들이 중심이 돼 '근대역사문화공간 아카데미투어'가 진행됐다. 60여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도 번듯한 건물은 물론 객석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대형 스크린과 당시의 영사기며 필름, 앰프, 변압기, 환풍시설까지도 그대로 있더란다. 최근 원주시에서는 문화재청이 국비지원사업으로 진행하는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활성화 확산사업에 공모하기로 결정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국비 지원금만 200억원이라니 사업 규모도 크거니와 모름지기 문화재란 우리 스스로가 지켜내고 후손에게 물려 줄 자산이라는 사실이다. 한번 훼손하고 헐어내면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아는 터다.
선화당과 포정루가 있는 국가사적439호 터에는 우체국 건물이 있었다. 문화원이 그 언저리에 있었고 원주군청이 선화당을 청사로 사용하는 일이 있었다. 시·군이 통합되기 전까지 그랬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기존의 선화당과 포정루를 연결해 후원으로 영주관과 봉래각이 세워지고 채악오, 조오정이 철저한 고증을 거쳐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됐다. 얼마나 흡족한 일인가? 그렇다. 아카데미극장이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활성화사업에 선정되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