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끊어질 듯 이어지는 것이 '선(線)'이다. 생명선은 숨을 잇고, 전화선은 사랑을 잇는다. 이처럼 선의 속성은 본디 '이음'이다. 그런데 지금의 선은 '단절'이다. 다른 종족에 선을 그은 대표적인 민족이 유대인이다. '이방인'이란 말도 여기서 나왔다. 이방인과는 통혼(通婚)조차 꺼렸다. '제노포비아(Xenophobia)'의 원조 격이다. 이방인과 낯선 이를 뜻하는 그리스어 '제노(Xeno)'에 공포와 혐오란 뜻의 '포비아(Phobia)'가 붙었다. ▼우리도 비슷하다. 고대 동예(東濊) 역시 지독한 이방인 기피증이 있었다. 부족끼리도 경계선을 넘으면 노예나 말로 벌금을 물어야 했다. 이른바 책화(責禍)다. 그래도 족외혼(族外婚)을 했다. 종족의 번성을 위해서는 선을 넘어야 했던 것일까. 외국인을 기피하면서도 다문화가정이 늘어나는 현실과 어쩐지 맥이 닿아 있다. ▼중국발 신종 코로나19가 해외로 번지면서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인들을 향한 인종차별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올 1월30일 영국 잉글랜드 사우스요크셔주 셰필드대학으로 향하던 한 중국인 유학생이 마스크를 썼다는 이유로 3명에게 폭언과 폭행에 시달렸다. 31일에는 독일 베를린에서 한 중국인 여성 2명이 외국인에게 폭행당해 병원에 입원하는 일도 있었다. 코로나19 사태가 한 달 넘게 계속되면서 많은 사람이 극도로 조심하고 있다. 국내에서 코로나19 감염증과 힘겨운 싸움을 하는 동안 나라 밖에선 한국과 한국인 포비아가 펴져 나가고 있다. 안에선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느라 집 밖으로 못 나가고, 밖에선 다른 나라가 '한국과의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아랍 속담에 “내 피부색보다 내 미덕이 무엇인지 물어다오”라고 했다. 인간을 잔인하게 만드는 편견 중에 가장 맹목적인 것이 인종 편견이다. 닫힌 마음으로는 '한국 포비아'만 전염병처럼 번져 나간다. 이를 박멸하는 길은 코로나19가 통제 가능한 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세계에 확인시켜주는 것뿐이다.
권혁순논설실장·hsgweon@kw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