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강원포럼]`자포자기'와 `자기포기'

하창수 소설가

하창수 소설가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애를 쓴다고 쓰는데 진척이 영 없을 때, 자신의 삶이 하루하루 겨우겨우 살아가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밀려들 때, 인간은 두 가지 상반된 태도 중 하나를 취한다. 그 하나는 자포자기(自暴自棄)고, 다른 하나는 자기포기(自己抛棄)다. 자포자기와 자기포기는 '포기한다'는 점에서만 동일할 뿐, 포기의 양상이나 방법, 포기의 대상이 완전히 다르며, 결정적으로 그 결과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를 가진다.

자포자기는 영어로 'Self-abandonment'. 포기를 뜻하는 'Abandon'은 절망을 뜻하는 'Despair'와 동의어다. 절망은 자포자기하게 만드는 이유인 동시에 자포자기한 뒤에 일어나는 결과이기도 하다. 즉, 뭔가를 하다가 절망적인 감정을 가지게 됨으로써 스스로 포기하게 되고, 절망감에 허우적이며 헤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는 것이다. 자포자기가 곧 절망이다.

자기포기는 영어로 'Self-renunciation'이다. 'Renunciation'은 사적인 욕심을 버린 무사(無私)와 무욕(無慾)의 상태를 뜻하며, 자신이 그동안 지켜왔던 신념이나 생활방식 일체를 포기한다는 선언을 의미한다. 이 말은 금욕(禁慾)을 뜻하기도 한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애를 쓰지만 결과가 난망할 때, 삶이 남루하고 초라하고 가치라곤 찾아볼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 자신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 자기포기다. 자기포기는 새로운 탄생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필자가 '자기포기'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절친한 친구 H의 '자기포기'란 제목의 책에서였다. 그는 감리교 목사지만, 범종교적인 사람이다. 석가탄신일이 되면 알고 지내는 스님의 절에 난초 화분을 보내고, 크리스마스에는 그 스님으로부터 성찬용 포도주를 받는, 자신만의 신을 '포기'하고 우주에 편재(遍在)하는 진정한 신을 '받아들인' 진정한 종교인이라는 게 그를 평가하는 내 안목이다. '자기포기'라는 H의 책에는 우화처럼 읽히는 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어느 수도자가 오랜 수련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그의 얼굴은 광채로 빛났고 몸에서는 여유가 향기처럼 퍼져 나왔다. 눈은 호수처럼 맑았다. 사람들은 깨달은 자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수련을 통해 참 많은 걸 얻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에게 “당신은 무엇을 얻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수도자는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저는 얻은 게 없습니다. 오히려 잃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걸 잃었지요.” 그가 달라져 보인 것은 뭔가를 얻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뭔가를, 아주 많은 것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얘기였다.

주의를 소홀히 해 잃어버릴 수도 있고, 누군가 훔쳐가서 잃을 수도 있다. 이때 우리는 화를 내거나, 억울해한다. 잃어버린 그것을 다시 채우고 나면, 이젠 잃을까 봐 노심초사한다. 가진 것을 스스로 내버릴 때도 역시 잃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된다. 하지만 이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은 화나 억울이 아니라 평온이다. '자발적 잃음'은 상실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우리에게 안겨준다. '자기포기'란 이런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포기하는가에 따라 포기는 기적을 선사하기도 하는 신비로운 행위다.

※ 본 기고는 '정신건강의 날'을 맞아 강원일보와 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가 공동으로 기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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