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법정에서 만난 세상]바늘 도둑의 습벽

고상교 춘천지법 영월지원 판사

형사재판을 하다 보면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을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하기 힘든 진리인 듯하다.

농촌에서 자란 필자는 어렸을 적 동네 꼬마들과 한집에 모여 고스톱을 치곤 하였다. 우리 형제와 나이가 같은 이웃집 형제가 있었는데, 그들은 어디서 배웠는지 초등학생의 실력이라고는 상상도 못 할 정도의 타짜들이었다. 한 번은 그 이웃집 형제들이 한 살 어린 동네 꼬마 아이와 화투를 치게 되었는데, 결과는 뻔하였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판돈이 계산보다 모자랐다. 판돈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된 이웃집 형제들은 돈을 다 잃고 집으로 향하던 꼬마 아이를 붙잡았다. 꼬마 아이는 처음에 자신은 절대 돈을 훔치지 않았다고 잡아떼었다. 그러나 그 아이 주머니에서 없어진 판돈이 나오자 범행을 순순히 자백하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동네 어른이 그 모습을 보고서 그 아이의 아버지에게 사실을 알린 것이다.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는 장면들이 있다. 꼬마 아이를 완전히 발가벗겨 놓고 그 아이 아버지가 낫을 들고 다가가는 장면, 그 아이 어머니가 살려달라고 아버지를 붙잡고 애원하는 장면, 멀리서 지켜보던 동네 친구들이 키득거리며 웃던 장면이다. 다행히 그 아이에 대한 아버지의 훈계는 그 정도로 마무리되었고, 그와 같은 훈계가 효과가 있었는지 그 아이는 속담과 달리 범죄와는 거리가 멀게 잘 살고 있다.

절도는 재범률이 가장 높은 범죄 중 하나다. 재범률이 높은 이유는 어려운 환경과 보호자의 부재 등과 같은 환경적인 요소도 있겠으나, 대부분 절도의 유혹을 버리지 못하는 습성에서 기인한다. 상습절도범의 범죄전력을 보면, 초년기에는 문구점, 마트 등에서 사소한 물건을 훔치거나 호기심에 자전거, 오토바이를 훔치기 시작하여 소년부 재판에서 몇 번 선처를 받은 후 결국 소년원에 다녀온다. 그 후 성년이 되면 범행 수법이 점차 대담해져서 빈집털이 등을 하다가 교도소를 수차례 들락거리게 되고 결국 상습절도범이 된다.

“도둑질한 사람은 사형에 처한다”라는 고대 함무라비 법전이나, “도둑질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타인의 재산을 침범하지 않는 것은 문명사회를 지켜주는 근본규칙이다. 4년 만에 형사재판을 맡아 보니 다시 낯익은 절도범과 마주하게 되었다. 같은 재판장에게 형사재판을 받는 일은 피고인이나 담당 판사도 정말 피하고 싶은 일이다. 판사로서 그때 실형을 선고하긴 하였으나, 재범 방지에는 별 효과가 없었구나 하는 회의도 든다.

최근 가게에 자주 도둑이 들었던 친구로부터 범인을 잡았는데 청소년이라면서 합의를 해줘야 할지 물어보는 전화를 받았다. 매주 전국을 누비는 '소도둑'을 마주하는 나로서는 법원과 교정기관에서 처리하도록 놔두라고 조언하였다. 소년원 교무과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소년절도범 중 직업훈련과 1대1 멘토링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던 청소년들만이 유독 낮은 재범률을 보였다고 한다. 결국, 우리가 어느 날 집과 직장에서 '소도둑'을 마주치고 싶지 않다면, 무조건적인 관용보다는 '바늘 도둑'에 대한 적절한 훈계와 적성을 찾아주어야 한다. 경제사정이 어려워지고 이혼율과 청년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소년 절도범이 늘고 있다. 이들이 잠재적인 '소도둑'으로 성장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엄한 훈계와 함께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원의 역사展

이코노미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