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독립선언문을 읽어 보면, 미국 독립의 아버지들은 개인의 절대적 자유를 향한 열망으로 영국에 대하여 독립전쟁을 선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본질은 식민지 주민들이 당시 영국의 과도한 경제적 수탈 정책에 맞서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하여 싸운 것이 독립전쟁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개인의 경제활동에 어느 정도까지 정부가 간섭도록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오늘까지도 미국정치의 주된 논쟁이 되어 왔다.
이 문제에 대한 철학과 시각의 차이로 미국의 양당정치가 정착되었으니, 공화당은 경제에서 작은 정부를 주장하고, 반대로 민주당은 정부의 큰 역할을 지지하고 있다.
감세와 증세, 개발과 보전, 규제완화, 의료, 복지 등 주요 사회 경제문제에 대한 양 정당의 대립은 결국 경제부문에서 정부의 역할에 대한 두 당의 상이한 입장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지난 1980년대 초 등장한 공화당의 레이건 대통령은 1960∼70년대 비대해진 정부의 비능률을 치유하기 위해 시장의 자유화와 탈규제를 강조하며 작은 정부를 주창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하였다.
그후 30여년, 미국과 세계는 역사에 유례가 없는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기존의 부국들은 경제의 질적 도약을 이루었고, 중국 인도 등 후진국에서 수십억의 인구가 빈곤에서 탈피하였다.
우리 한국도 세계 13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다.
신자유주의가 풍요의 복음으로 자리매김하는 듯 보였다.
그러다가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를 패닉에 몰아넣고 있다.
전 세계가 대공황의 기억으로 두려워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 시장의 실패이고 신자유주의의 좌초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미국 금융 산업계의 무절제한 이윤추구가 직접적 원인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부자가 되고자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금융인의 고해성사마저 나오고 있다.
기업의 이윤추구가 도를 넘어 탐욕으로 변질되는 순간 자본주의 자기부정의 씨가 잉태되었던 것이다.
사실 오래전부터 주택시장 붕괴 가능성과 주택담보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없진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경고는 20년간 미국 경제 대통령으로 군림했던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위 의장의 금융시장 자유화 정책에 밀려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말았다.
당시 미국과 세계가 누렸던 경제 호황의 설계자로 칭송받았던 그린스펀이었으니, 누구도 그의 판단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는 모두 지금의 혼돈을 그의 오랜 저금리 정책과 금융 자유화 정책의 탓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린스펀도 얼마 전 미 하원 청문회에 출석하여, 자신이 시장의 자기교정 능력을 과신하였고 무분별한 모기지 대출의 파괴력을 예상치 못한 과오를 인정했다.
시장기능의 참담한 실패에 신자유주의자들은 수세에 몰리고, 다시금 정부에 의한 규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인간의 이윤추구 행위가 사회발전의 원동력임을 인정하더라도, 속성상 탐욕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자율에 시장을 맡기는 것은 역시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모두가 마시는 물에 독을 풀지 못하도록 감시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제 공은 각국 정부로 넘어갔다.
세계 모든 국가가 국제공조를 통하여 금융위기에 따른 신용경색을 해소하여 경제가 산소 부족으로 마비되는 것을 막는데 주력하고 있다.
동시에 타격을 입은 실물경제를 회생시키는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강구할 것이다.
앞으로 유사한 사태를 막고 세계 경제의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국제금융시스템도 논의될 것이다.
모든 국가가 위기에 직면하여 역사상 전례가 없는 정도의 과감하고 신속한 협력을 보이고 있는 사실은 현 위기가 앞으로 세계 경제에 긍정적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게 한다.
당분간은 전 세계적으로 경기침체소식은 계속될 것이고 시장은 앞으로 몇 번이나 다시 요동칠지 알 수 없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노도 더욱 강하게 표출될 것이다.
그러나 인류사회의 풍요를 가능케 한 시장경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진 학습을 통하여 정부와 시장 간 올바른 균형을 찾는다면 더욱 건강하고 성숙된 제도로 발전할 것이다.
그것이 역사의 발전 방식이다.
조규형 주브라질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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