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동고속도로 강릉방향으로 향하다 횡성 새말인터체인지에서 빠져 나오면 고속도로 개통 이전에 서울과 강릉을 잇는 유일한 도로 였던 국도 42호선이 눈에 들어온다.
국도 42호선을 따라 강릉방향으로 구절양장(九折羊腸)처럼 산을 휘감은 도로를 운행하다 보면 어느새 구름도 쉬다 넘어간다는 전재의 정상에 오른다.
전재 정상에 차를 세워 놓고 구름 한점 없는 옥빛 가을하늘과 골바람을 타고 한들거리는 코스모스의 정취에 취해 있으면 삭막한 도심의 삶 대신에 봇짐을 지고 이곳을 넘던 나그네가 읊조리던 풍월이 자연스럽게 입가에 맴돈다.
전재에서 땀을 식힌 뒤 다시 차를 몰아 10분여 고개를 내려가다 보면 오늘의 종착역인 안흥찐빵 마을(안흥1리)이 유유히 흘러가는 주천강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있다.
서울서 강릉가는 버스들이 반드시 쉬어가던 휴게소
한때 영동고속도로 개통 이후 두집 건너 빈집 아픔도
찐빵 사려고 줄지어 섰던 기억이 죽어가는 마을 살려
하늘의 옥빛을 담아 눈이 시릴정도로 푸른 물결과 강물을 가로지르며 놓여있는 섶다리 사이로 보이는 들녘은 풍요로운 우리네 농촌의 전형적인 가을 풍경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여행자를 위해 설치한 여관과 타고갈 수 있는 말이 항상 있어 관촌, 관말, 역촌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안흥찐빵 마을은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이전인 70년대까지 서울∼강릉을 잇는 교통요지였다.
안흥1리 노인회 이상욱총무(74)는 “우리마을은 서울에서 강릉까지 가는 버스들이 반드시 쉬었다가 가는 휴게소였다”며 “그때는 횡성읍 보다도 더 큰 상권이 조성돼 있었다”고 회상했다.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 안흥1리를 찾는 차량들은 차츰 줄어들었으며 상인들이 떠난 뒤 마을 곳곳에 남아있는 빈 건물들 만이 60∼70년대 다른 농촌에서 보기 힘들었던 여관과 식당 등이 성업을 이뤘었다는 추억을 떠올려 주고 있다.
하지만 그 시절 길손들이 들러 잠시 쉬며 먼길을 가기 위해 마을에 들러 먹었던 안흥찐빵은 현대인들에게 잊혀져 가는 고향의 정취와 향수를 느끼게 하는 구수한 손 맛으로 다시 사랑을 받고 있다.
오랜시간 다시 버스를 타고 길을 떠나야 했던 나그네들의 유일한 휴식처였던 이마을에서 찐빵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 섰던 풍경이 웰빙바람을 타고 다시 나타나고 있는 것.
1995년 강원일보를 통해 안흥찐빵이 소개된 뒤 전국 대표 찐빵마을로 부상하며 1∼2개에 불과했던 찐빵 판매업소도 어느새 16개소로 늘어나고 안흥1리 주민들 중 50여명이 찐빵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조남국 이장은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 사람들이 모두 떠나 두집 건너 한집이 빌 정도였는데 안흥찐빵으로 마을이 다시 예전의 활기를 되찾고 있다”고 말했다.
안흥1리 마을 주민들은 2002년부터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얻고 있는 안흥찐빵을 주제로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해마다 10월에 열리는 찐빵축제는 어머니의 손맛과 고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찐빵은 물론 깨끗하고 청정한 시골정취를 맛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도시민들에게 인기를 모으고 있다.
안흥1리 주민들은 요즘 10월3일부터 5일까지 마을 곳곳에서 펼쳐지는 제7회 안흥찐빵축제를 앞두고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느껴봐요 추억의 맛∼ 함께해요 안흥찐빵축제’를 테마로 열리는 올해 축제에는 찐빵을 중심으로 역사와 전통이 가미된 다양한 먹거리와 체험 코너로 펼쳐질 예정이다.
축제장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통기타, 색소폰 연주를 비롯해 브라질 삼바공연, 찐빵을 주제로 한 레크리에이션, 안흥찐빵 가요제, 청소년 댄스경연대회, 중국 상하이기예단의 서커스, 남도민요와 경기민요가 함께하는 전통소리 등 다양한 공연도 마련했다.
찐빵만들기 체험과 무료 시식회, 찐빵 빨리먹기, 찐빵 탑쌓기 등 찐빵관련 행사는 물론 주천강에 놓인 섶다리와 돌다리 건너기, 새끼꼬기, 도리깨질, 짚신삼기, 제기차기, 투호놀이, 봉숭아 물들이기 등 다양한 즐길거리도 선보인다.
주민들은 특히 마을을 끼고 도는 주천강변에 코스모스 꽃길을 조성하고 1만2,654㎡에 코스모스 꽃밭도 만들어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하기 위한 준비도 끝냈다.
안흥찐빵축제추진위원회 함종국위원장(안흥1리)은 “마을 주민들이 함께 고향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는 축제가 되도록 준비하고 있다”며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 체험거리 등을 마련해 우리마을이 국민의 고향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안흥1리 ‘안흥찐빵 마을’ 사람들
구근회(71)할아버지는 “예전에는 2,000여평의 논에 농사를 지었는데 이제는 나이를 먹어 힘들다”며 “생활은 집사람이 빵집에서 일하며 벌어오는 돈으로 유지하고 나는 매일 노인회관에 나와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만 하는 백수”라고 소개해 주위를 웃음 바다로 만들었다.
강릉이 고향인 이상욱(74)할아버지는 “89년 강림면 부면장으로 공직생활을 끝낸 뒤 이마을이 좋아서 고향인 강릉을 버리고 정착했다”며 “처음에는 이사를 가려고도 생각했지만 아이들이 모두 부모님은 안흥에서 사셔야 한다고 극구 말려서 이곳에 정착하게 됐다”고 찐빵마을 예찬론을 폈다.
장태복(69)할아버지는 “강림에서 살다가 도저히 먹고살기 힘들어 나이 40에 이마을로 이사를 오게 됐다”며 “주위에 나처럼 나이가 많은 친구가 여럿이어서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같은 마을 총각에게 17세때 시집왔다는 이옥희(76)할머니는 “젊었을 때는 전재고개를 넘어 다른 지역에서 사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어느덧 한평생 고향을 지키게 됐다”며 “옥수수와 감자로 5남매를 키우다 보니 어느새 머리가 희끗희끗 해졌지만 이제는 고향에서 떠나라고 해도 나가고 싶지 않다”고 소녀같은 미소를 지었다.
14세에 영월에서 시집온 최복녀(78)할머니는 “친정 아버지가 입을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 14살 밖에 안된 나를 안흥으로 시집보냈다”며 “홀로된 시아버지와 작은시아버지, 남편까지 뒷바라지 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내맘같이 순하고 정이 많은 이웃이 함께 해줘 힘든줄도 모르고 살아왔다”고 순박한 인심을 자랑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모두 안흥에서 학교를 보내며 고향을 지키고 있는 이현일(47)새마을지도자는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도시에 나가야지만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것은 편견”이라며 “온가족이 함께 고향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고향지킴이라는 긍지를 보였다.
종갓집 맏며느리로 시집와 4대가 한집에서 생활했다는 김미경(48)부녀회장은 “처음 남편을 따라 전재를 넘어설때는 이곳에도 사람이 살까라는 의구심을 가졌는데 이제는 우리마을을 떠나서는 못살 것 같다”며 얼굴이 조그맣게 나오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학교앞에서 핫도그와 호떡장사를 하다 지금은 찐빵을 팔고 있는 남옥윤(59)씨는 “찐빵으로 아들딸 모두 키우고 이제는 막내딸 결혼을 한달여 앞두고 있다”며 “찐빵이 우리 가족을 키워주었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사가 꿈인 박한수(18)군은 “우리 마을이 길도 넓어지고 사람도 많이 들어와 사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며 “나중에 커서 우리마을에 살며 할아버지 할머니와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제천에서 살다가 안흥에 정착한 안흥1리 이장 조남국(57)씨와 부인 홍명자(57)씨 부부는 “우리마을은 젊은 사람은 어른들을 공경하고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삶의 지혜를 나눠주는 효도 마을”이라며 “살면 살수록 정이 넘치는 곳”이라고 자랑했다.
함종국안흥찐빵축제위원장은 “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모두가 한가족 처럼 어울려 사는 곳이 안흥 찐빵마을”이라며 “찐빵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을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마을이 되도록 함께 노력해 나가겠다”고 했다.
횡성=이명우기자 woolee@kw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