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인공지능(AI)의 파도가 밀려오는 대전환의 시대, 인류는 어떻게 인간의 존엄을 지켜낼 수 있을까. 평창 오대산 월정사 주지 퇴우 정념 스님의 신간 ‘퇴우 정념, 시대를 깨우다’는 이 무거운 질문에 대해 1,700년 한국 불교의 지혜를 빌려 따뜻하고도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는 책이다.
정념스님은 AI 기술이 주도하는 거대한 쓰나미를 진단하며, 인간의 노동이 사라진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묻는다. 기계가 고도의 효율성과 정보력이라는 ‘오신통(五神通)’을 완벽하게 구현하더라도, 인간 고유의 영역인 번뇌를 끊어내는 궁극의 지혜 ‘누진통(漏盡通)’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음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결국 인간은 텅 빈 잉여의 시간을 말초적 쾌락이 아닌 내면을 닦는 참선과 예술 창조, 이웃을 돌보는 자비행으로 채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AI는 인간의 업(業)을 먹고 자라는 거울과 같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진·선·미의 선한 데이터를 세상에 남겨야만 AI 역시 인류를 돕는 따뜻한 조력자로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념스님의 성찰은 자본주의의 짙은 그늘인 극심한 양극화와 사회 갈등의 치유로 이어진다. 경쟁과 승자독식은 오직 ‘나’라는 좁은 울타리에 갇힌 아상(我相)에서 비롯됨을 꼬집으며, 우주 만물이 그물코처럼 얽혀 있다는 화엄경의 ‘인드라망’ 세계관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타인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임을 깨닫고 거리로 나서 기후 위기와 불평등에 연대하는 ‘시민보살(市民菩薩)’ 운동이야말로 파편화된 세상을 구원할 열쇠라는 것이다.
이러한 화엄의 철학을 바탕으로 산문을 열고 대중과 접속해 온 월정사의 발자취도 생생하게 담겨 있다. 취임 당시 화환을 거절하고 투병 중인 어린이를 도왔던 일화, 일반인들에게 삭발과 묵언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찾는 기회를 제공한 ‘단기출가학교’, 그리고 적광전 앞마당에서 비보이 댄스와 클래식 음악회를 열었던 ‘오대산문화축전’, 그 소통의 기록들이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특히 일제에 약탈당했던 귀중한 문화재를 110여 년 만에 오대산으로 되찾아 온 조선왕조실록·의궤 환수 투쟁기는 이 책의 백미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을 때 그 빛을 발한다”는 저자의 외침은 단순한 유물 반환을 넘어 잃어버린 민족정기를 회복한 쾌거로 다가온다.
이 책은 완벽한 준비를 기다리며 머뭇거리기보다, 일단 문을 열고 달려가며 대중과 호흡하자는 ‘개문발차(開門發車)’의 선언으로, 무한 경쟁과 속도전에 지쳐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상생과 연대의 화엄 세상으로 향하는 든든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퇴우 정념, 시대를 깨우다’ 출판기념회는 오는 19일 오후 5시 서울 앰버서더풀만호텔 그랜드볼륨에서 마련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