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초(如初) 김응현(1927~2007년) 선생은 당대 최고의 명필이었다. 대대로 명필가 집안에서 태어나 한문서예 오체(五體)인 전서·예서·해서·행서·초서에 모두 능했으며, 한글서예와 전각도 뛰어났다. ‘추사 이후 여초''라는 찬사를 받았다. 국내 최초의 서예연구교육기관인 ‘동방연서회'' 창립을 주도하고 1969년부터 이사장을 맡아 9,000명의 후학을 양성하는 등 서법교육에도 평생을 바쳤다. 그는 서예 정신으로 ‘법고창신''을 강조했다. “법을 고전에서 찾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것을 모토로 삼고 서예교육을 했다. 엄격한 서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그 안에서 자연스러움을 찾아내는 기인이었다. ▼설악산 암자인 영시암 중건에 앞장선 그는 1996년부터 인제군 북면 한계리에 ‘구룡동천(九龍洞天)''이라는 집을 짓고 자연과 벗 삼아 만년의 자유로운 작품세계를 펼쳤다. 교통사고로 오른쪽 손목이 골절돼 붓을 들 수 없게 되자, 평생 쓰지 않던 왼손으로 붓을 잡고 작품활동을 해 왼손글씨 전시인 좌수전을 열었다. ‘나를 닮으라는 권위 아닌 권위를 적으로 삼는다'', ‘대가가 되려면 새로운 경지를 개창해야 한다''는 자신의 말들을 실천에 옮긴 셈이다. 그의 생애를 기념한 여초서예관이 2013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건립됐다. ▼선생은 본보와도 연이 깊다. 10·26 사건 이후 신군부 세력의 등장으로 언론도 암흑기를 맞았던 시기, 강원일보는 1982년 2월12일 지령 1만호를 발행하며, 제2의 창간을 선언했다. 이날을 기해 제호 글씨와 사기(社旗) 등을 모두 바꿨다. 그때 여초 선생이 쓴 강원일보(江原日報) 제호가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2027년은 여초 선생의 탄생 100주년, 서거 20주년이 되는 해다. 인제군은 19일부터 여초서예관에서 지난해 여초서예대전 수상작들을 전시하고, 이달 말까지 여초 작품 탁본 체험을 실시한다. 내년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도 준비에 들어갔다. 여초 선생의 기념사업들이 잘 진행되고, 그의 선비정신이 후대에 잘 계승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