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우리나라 농업은 과거 ‘보릿고개’를 극복하기 위한 ‘식량 증산’이라는 국가적 과제아래, 벼농사 중심의 인프라와 농업용수 공급체계를 구축해 왔다. 그러나 밭 농업은 기반 정비 및 기계화가 상대적으로 늦어졌으며, 기존의 밭기반정비사업은 대부분 관정 개발 등에 의존하여, 극심한 가뭄 시 용수공급에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등 노지 밭작물 재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쌀 공급 과잉, 소비 패턴의 변화, 기후 위기 심화라는 환경적 변곡점 속에서 밭농업의 중요성은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특히 강원특별자치도는 2025년 통계연보에 따르면 총 경지면적(99,531ha) 중 밭은 약 70%인 69,635ha로 우리나라 고랭지 밭농업의 핵심지로 험준한 지형을 극복하며 쌓아온 혁신적인 현장의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안반데기 한발대비용수개발사업이다. 가파른 경사와 고지대라는 지형적 특성 탓에 상습 가뭄에 시달리던 이곳은 이제 안정적 농업용수 확보 및 공급을 통해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취수보와 가압 펌프장, 대규모 저수조, 그리고 13km에 달하는 송·급수 관로 설치하여 해발 1,000m 이상 고지대에도 안정적인 물 공급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는 단순한 시설 확충을 넘어 지형적 페널티를 기술로 극복한 혁신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한국농어촌공사 강원지역본부에서 추진 중인 홍천군 괸돌지구와 자운지구 다목적 농촌용수개발사업은 전국 최초로 밭용수 공급 전용 저수지를 개발한다는 점에서 밭농업 용수 체계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이제 강원도의 이러한 성공 사례를 전국적 표준 모델로 확산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 ‘밭 중심 생산기반정비’를 위한 5대 전환 과제를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밭 중심의 복합 용수공급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기존의 지하수 중심 구조에서 탈피해 지표수와 지하수를 결합한 복합 수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중소규모 저수지, 소형 저류지, 양수장 등 지역 특성에 맞는 다양한 수원을 확보하고, 특히 고랭지와 같은 특수한 지형에는 가압식 송수 시스템을 전면 도입하여 지형적 한계를 기술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둘째, 집단화·광역화 기반의 생산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단순한 필지 단위의 소규모 정비를 넘어, 들녘 단위의 집단화가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기계화율을 높여 생산비를 절감하고, 고소득 밭 작물 중심의 주산단지를 육성해야 한다. 아울러 공동 농기계 활용과 선별·유통 시설 구축을 통해 농업경영체 중심의 협업 구조를 강화해야 한다.
셋째, ICT 기반의 스마트 농업 인프라를 도입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해 디지털 전환은 이제 필수요소이다. 토양 수분, 기상 정보, 생육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하는 ICT 기반 관개 시스템을 구축하여 물 사용 효율을 극대화해야 한다. 또한 AI 병해충 예측 시스템을 도입해 작물의 생산성을 높이고 노동력을 획기적으로 절감하는 ‘데이터 기반 농업’으로 나아가야 한다.
넷째, 기후변화 대응형 인프라 설계가 필요하다. 미래의 농업 생산기반은 단순히 기반시설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력을 갖추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가뭄 대응 저류조 확충, 분산형 물관리 시스템 도입, 용수 취약성 평가 기반의 정밀 설계 등을 통해 극심한 기상이변에도 안정적인 생산기반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다섯째, 국가 주도의 정책 및 재정 체계를 재정립해야 한다. 밭농업 정비는 지자체 차원의 사업을 넘어 국가 전략 과제로 다뤄져야 한다. 농지관리기금의 유연한 활용과 전용 사업코드 신설 등을 통해 안정적인 재원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정부, 국회, 농업인 간의 공감대를 형성하여 정책 추진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밭 농업은 더 이상 논 농업의 보완적 영역이 아니다. 기후 위기와 식량 안보라는 시대적 요구 속에서 밭농업은 미래 농업의 핵심축으로 자리 매김해야 한다. 앞으로의 생산기반정비사업은 단순 시설 개선을 넘어 ‘용수 체계 혁신, 규모화, 디지털 전환, 기후 대응’을 통합한 국가 전략 사업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강원특별자치도의 성공 사례가 대한민국 농업의 체질을 바꾸고, 밭 농업을 고부가가치 미래 신산업으로 격상시키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