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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규제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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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남원기자

 규제는 본디 울타리다. 들판을 지키는 울타리는 필요하지만, 자라나는 풀의 목을 조르면 그것은 족쇄가 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첫 규제합리화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규제를 정리하는 것에 더해 규제 시스템을 국제 표준에 맞춰가야 한다”고 말했다. 28년 만의 전면 개편은 이 오래된 울타리를 다시 세우겠다는 선언이다. 허용을 기본으로 하고 금지만 남긴다는 발상은 늦었지만 방향은 또렷하다. 문제는 칼을 쥔 손이 아니라, 칼끝이 향하는 자리다. 규제의 관성은 생각보다 질기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다.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지금의 규제는 모자람보다 넘침의 병에 가깝다. 성장을 독려한다면서 성장의 사다리를 끊어 놓는 형국이다.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반도체, 인공지능 투자를 위해 ‘벽’을 없애 달라는 산업계 요청을 반영한 국가첨단전략산업법(첨단전략산업 금산분리 규제 완화)이 4개월째 국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산업과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데, 규정은 옛 좌표에 머문다. 반도체와 인공지능의 시간은 분 단위로 달리는데, 법은 계절을 건너뛴다.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원청기업이 하청기업 근로자의 안전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면,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에 따라 하청 노조와 교섭을 해야 한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하청기업의 안전관리에 개입하기를 꺼리게 만든다. 서로 충돌하는 규정은 기업의 손발을 묶고, 책임의 그늘만 키운다. 안전을 위해 만든 장치가 오히려 안전을 회피하게 만드는 모순도 여기서 나온다. ▼ 결국 답은 간단하지만 어렵다. 필요한 규제와 불필요한 규제를 가르는 일, 그리고 그 경계에 책임을 세우는 일이다. 허용을 기본으로 하되 금지의 이유를 정부가 입증해야 한다. 종이에 적힌 개혁이 아니라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로. 울타리는 남기되, 숨통은 틔워야 한다. 규제가 나라의 발목을 잡는다면 그것은 이미 규제가 아니다. 이제는 자를 것은 자르고, 지킬 것은 지켜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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