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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쌀값과 ‘신뢰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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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남원 기자

쌀이 남는다는데 쌀값은 오른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올 1월 쌀 물가 상승률은 18.6%를 기록했다. 지난해 10월(21.3%)보다는 상승 폭이 둔화했으나 여전히 두 자릿수 오름세다. 2월5일 기준 산지 쌀값은 20㎏당 5만7,558원으로 전 분기 대비 0.4% 뛰었다. 80㎏ 기준으로는 23만원을 넘었다. 정부가 뒤늦게 비축미를 풀겠다고 나섰지만 구조적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다. 수확의 계절이 지나도 산지 가격은 고공을 난다. 소비는 줄고 생산은 넘친다는데 숫자는 서로를 배반한다. 들녘의 바람은 잦아들었으나 시장의 바람은 거칠다. 쌀은 쌓였고, 가격은 들떴다. 풍년가 대신 한숨이 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다.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했거늘 지금의 쌀판이 꼭 그 모양이다. 남아도는 곡식이 되레 값을 떠받치니 기이한 역설이다. 기다리면 더 오른다는 심리가 창고 문을 닫아걸고, 닫힌 문은 다시 값을 자극한다. 풍년이 흉년을 부르는 형국, 시장은 스스로 매듭을 짓지 못한 채 기대라는 불씨만 키운다. ▼“티끌이 쌓여 산이 된다” 했듯, 정책의 미세한 오판이 오늘의 파고를 만들었다. 내년 8월 시행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다. 과거엔 정부가 자체 판단으로 쌀 매입 여부와 규모를 정했다. 개정안은 생산량과 가격이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정부가 ‘자동 매입’하는 구조다. 즉, 쌀 자동 매입의 그물은 안심을 주는 대신 과잉을 품을 공산이 크다. 가격 하락의 공포를 거둬주면 재배는 줄지 않는다. 논은 더 푸르고 창고는 더 무겁다. 작물 전환은 구호로 남고, 재정의 쌀자루는 해마다 불어난다. 보호와 왜곡의 경계가 흐려진다. ▼쌀은 죄가 없다. 다만 길을 잃은 것은 수급의 나침반이다. 단기 처방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소비 감소와 품종 변화, 농가 구조를 함께 묶는 설계가 요구되는 지금이다. 쌀값은 숫자가 아니라 신뢰의 값이다. 신뢰가 무너지면 풍년도 약이 되지 못한다. 지금 필요한 건 방출이 아니라 방향이다. 쌀이 쌓인 들판 위로 정책의 눈금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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