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연극을 ‘한국적인 것으로’ 바꾼 연출가 김정옥 별세…향년 9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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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연출가 김정옥(金正鈺)씨. 사진=연합뉴스

전통연희와 굿 형식을 연극 무대에 본격적으로 끌어들여 ‘이국적인 연극’을 ‘한국적인 연극’으로 바꿔냈다는 평가를 받아온 연극 연출가 김정옥(金正鈺)씨가 17일 오전 5시7분께 별세했다.

향년 94세.

고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서중(6년제)을 졸업한 뒤 중앙대 국문과에 진학했다가 서울대 불문과로 옮겨 졸업했다.

이후 프랑스 소르본대에서 불문학과 영화학을 공부했다.

유학 시절 프랑스에 머물던 유치진(1905∼1974)의 영향을 받은 것이 연극으로 방향을 튼 계기가 됐다.

고인은 유치진이 1957년 유네스코 국제극예술협회(ITI) 본부를 방문해 한국 가입 의사를 밝히는 과정에도 힘을 보탰다.

1959년 귀국한 뒤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전임강사가 되면서 연극인의 길을 본격적으로 걸었다.

중앙대에 재직하며 이화여대 연극반을 지도했고, 민국일보 기자로도 일했다. 시나리오 ‘사랑의 함정’은 1960년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같은 해 김종원·이영일 등이 영화비평가협회를 결성할 때도 참여했다.

연출 경력은 1961년 이화여대 연극반 학생들과 올린 ‘리시스트라다’로 시작됐다.

이후 1962년 드라마센터 개관 공연 ‘햄릿’에서 조연출을 맡았고, 1963년 민중극장 창단과 함께 본격적인 연출가로 나섰다.

창립 공연은 ‘달걀’, 뒤이어 부조리극 ‘대머리 여가수’를 무대에 올렸다.

당시 무대에는 박근형, 오현주, 김혜자, 추송웅, 박정자, 김무생, 권성덕, 김정, 구문회 등이 참여했다.

특히 ‘대머리 여가수’는 1977년 원작자 외젠 이오네스코(1909∼1994)가 방한해 관람한 뒤 찬사를 보낸 작품으로도 전해진다. 배우 김혜자는 1961년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으나 활동을 중단했다가, 고인의 연출작 ‘달걀’과 ‘도적들의 무도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66년에는 극단 ‘자유’를 창립하고 ‘따라지의 향연’(1966) 등을 통해 국내 대표 연출가로 부상했다.

살롱 드라마와 몰리에르 희극, 부조리극 등 번역극을 연출하는 한편, 사실주의 무대를 흔드는 실험을 꾸준히 이어갔다.

희극성과 연극성을 강조한 무대미학 개발에 앞장섰고, 창작극 연출에서는 한국적 전통을 가미해 재창조하는 실험적 시도를 확대했다.

고인이 ‘무엇이 될고하니’(1978)를 기점으로 전통연희와 굿 형식을 본격 수용하면서, 그의 무대는 또 한 번 분기점을 맞았다.

‘피의 결혼’(1984), ‘바람은 불어도 꽃은 피네’(1984) 등을 통해 ‘서양적인 것에서 동양적인 것으로’, ‘이국적인 것에서 한국적인 것으로’ 연극을 변모시켰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와 함께 집단 창조, 총체극, 몽타주 수법 등 줄거리 중심 관습에서 벗어난 실험도 지속했다.

1991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고, 1995년 6월 아시아인 최초로 ITI 회장에 선출돼 3연임한 뒤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60여년 동안 국내외 무대에서 200여편을 연출하며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연출가로 자리매김했고, 순회공연 등을 통해 한국 연극을 해외에 알리는 데에도 기여했다.

2021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구술 채록 면담에서는 ‘연극 연출계 1세대’라는 소개에 “1세대는 유치진, 이해랑, 이진순, 박진 선생 같은 분들”이라며 자신을 “그 다음 세대”로 규정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나, 살아남은 자의 증언’(2020), ‘나의 연출 작업, 체험적 연출론’(2020) 등이 있다. 2004년에는 얼굴박물관을 개관했다.

유족은 부인 조경자씨와 1남1녀(김승미<서울예대 교수>·김승균), 사위 홍승일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4호실이며 17일 오후 6시 이후 조문할 수 있다.

발인은 20일 오전 7시30분. ☎ 02-2258-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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