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호등]사람이 만든 화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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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윤 사회체육부 차장

넷플릭스의 2019년작 다큐멘터리 ‘그날, 패러다이스(Fire in Paradise)’는 2018년 11월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패러다이스에서 발생한 최악의 산불을 다뤘다. 생존자 증언과 현장 영상, 블랙박스, 휴대폰 촬영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해 산불의 확산과 피해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에는 “그건 단순한 산불이 아니었다. 바람이 만든 괴물이었다.”는 대사가 나온다.

이 대사를 들으며 강원도 산불의 주요 원인이 되는 ‘양간지풍’이 떠올랐다. 양간지풍은 봄철 남고북저 기압 배치에서 서풍이 태백산맥을 넘으며 푄으로 가속·건조해져 양양과 고성(간성) 사이 골짜기를 지나는 국지강풍이다.

이처럼 산불은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건조한 대기가 장시간 이어지는 강원 영동지역의 경우 산불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다. 그러면 산불은 단순한 자연재난일까?

1996년 4월23일,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에서 시작된 불길은 사흘 동안 축구장 5,268개 면적(3,762ha)을 삼켰다. 국내 최초의 ‘대형 산불’로 기록된 이 사건은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돌아봐도 섬뜩하다. 강풍과 건조한 날씨 속에서 나무가 펑펑 터지며 타들어가던 그 소리는 아직도 생생하다는 주민들의 회상은 당시의 참상을 고스란히 전한다. 30년이 흐른 올해 1월 당시 산불 피해지역을 취재했다.

고성의 산은 다시 울창해졌다. 표면적으로는 숲이 다시 복구된듯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또 다른 위험이 조용히 쌓이고 있었다. 낙엽, 고사목, 쓰러진 나무, 솔잎과 같은 가연성 연료가 곳곳에 산처럼 쌓여 있다. 강풍이 불 때마다 낙엽이 들썩거릴 정도였다. 예산 부족, 인력 한계, 주민 수용성 문제 등이 겹치며 연료 관리, 하층 식생 제거, 숲 구조 조정 같은 핵심 작업은 뒷전으로 밀렸다. 산불 예방 기술이나 첨단 장비도 도입됐으나 산악 지형의 특성상 사각지대가 넓고, 실질적인 감시는 여전히 사람의 몫이었다. 드론·AI 기술은 상시 운영 체계로 자리 잡지 못했고, 지상·항공 진화는 날씨 앞에서 속수무책이 되는 경우가 연례행사처럼 반복된다. 예산 구조 또한 진화·복구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복구가 끝났으니 이제 괜찮다’는 안도감이 오히려 새로운 위험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산불을 ‘발생하면 끄는 재난’으로 보는 인식이 30년 전과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30년간 강원도에서 산불은 반복되어 왔다. 특히 기후변화는 산불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제 산불은 특정 계절의 재난이 아니고 연중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상시 재난이 됐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산불은 강한 바람, 메마른 대기 등 자연적 영향을 많이 받는다. 단순한 자연 재난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관리되지 않은 숲은 불쏘시개, 산은 화약고가 된다. 산불 예방의 핵심은 연료 감소, 위험 지역 사전 차단, 혼효림 확대, 지속적 모니터링 등이다. 단순히 헬기를 늘리고 구조 장비를 보강하는 것으로는 대형 산불 시대를 이겨낼 수 없다. 산을 관리하고 예방이 우선이 되는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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