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방문 중 건강이 악화돼 의식불명 상태로 치료를 받아온 이해찬(73)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별세하자 이재명 대통령은 25일 "대한민국은 오늘 민주주의 역사의 큰 스승을 잃었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고인의 별세 소식에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대한민국을 대표해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를 전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우선 이 대통령은 이 수석부의장에 대해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 일생을 바치셨다"며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던 청년의 기개는 국정의 중심에서 정교한 정책으로 승화됐다"고 돌아봤다.
이어 "시대적 과제 앞에서 원칙과 소신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안정과 개혁을 조화롭게 끌어내는 탁월한 지도력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특히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하며 수도권과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혁신적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 수석부의장이 보여준 남북관계 비전과 관련해서도 "통일을 향한 확고한 신념으로 평화의 길을 모색하셨던 수석부의장님의 뜻을 되새겨본다"며 "함께 이루고자 했던 꿈을 완성하지 못한 채 떠나보내야 하는 아쉬움은 말로 다 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강물은 굽이쳐도 결국 바다로 흘러가듯, 그토록 이루고자 하셨던 민주주의와 평화통일, 그리고 대한민국 균형발전을 향한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남겨주신 귀한 정치적 유산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이 수석부의장님, 이제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시고 영면하시길 기원한다"며 거듭 애도의 뜻을 밝혔다.
앞서 민주평통에 따르면 이 수석부의장은 민주평통 아태지역 운영위원회 참석차 베트남 호찌민 출장 중이던 지난 23일 쓰러져 현지 병원으로 긴급 이송된 지 이틀만인 이날 오후 2시 48분(현지시간)께 숨을 거뒀다.
이 수석부의장은 심근경색 진단을 받고 현지 의료진으로부터 스텐트 시술치료를 받았지만 회복하지 못했다.
이 수석부의장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재명 대통령은 6선의 조정식 정무특보를 베트남 현지로 급파했다. 이재정·김영배·김현·이해식·최민희 의원 등 그와 가까운 민주당 의원들도 잇따라 현지로 향했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 수석부의장의 시신은 26일 밤 대한항공편으로 현지를 떠나 27일 오전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운구될 예정이다. 고인은 현재 베트남의 한 군 병원에 임시 안치돼 있다.
민주평통은 현재 유가족이 관계기관과 함께 국내 운구 및 장례 절차를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김정옥 씨와 딸 현주 씨가 있다.
고인은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덕수중·용산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한 1973년 10월 교내 유인물 사건에 연루돼 수배됐고, 이듬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1년 가까이 옥고를 치렀다. 이후 민주화 운동에 몸을 바쳤다.
출소 후에는 서울대 인근에 책방 '광장서적'을 개업하고, 출판사 '돌베개'를 설립하는 등 재야에서 운동을 이어갔다.
1980년 대학에 돌아온 그는 복학생협의회 회장을 맡아 활동하다 그해 6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다시 구속됐고, 2년 만에 성탄절 특사로 풀려났다.
1987년 13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낙선한 후 재야 입당파들과 평화민주당에 입당,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서울 관악을 지역구에 출마해 민주정의당 김종인 후보를 꺾고 국회에 입성했다.
서울 관악을 지역구에서만 13대 총선부터 17대까지 내리 5선을 했다. 이후 지역구를 세종시로 옮겨 19·20대까지 7선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서울시 정무부시장(1995년), 교육부 장관(1998년), 국무총리(2004년)까지 지방자치와 제도권 정치의 정점을 모두 경험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으로 교육 개혁을 진두지휘했지만, '학교 교육 정상화'를 추진하면서 학력 저하 논란을 낳아 '이해찬 세대'라는 신조어가 나오기도 했다.
참여정부에서는 국무총리에 취임해 노무현 대통령과 긴밀히 소통하며 국정 전반을 총괄하는 등 '책임총리제'를 정착시켰다.
여의도 정치 무대에서는 대선과 총선 때마다 기획·정책을 맡았다.
소속 정당이 여야를 오가는 동안 총 세 차례 정책위원회의장을 지내는 등 민주 진영의 전략 기획가로 활약해 왔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2020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낼 때는 '민주당 20년 집권계획'을 역설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각별한 정치적 동지로 지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인 2014∼2018년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2018년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선출돼 2020년 21대 총선의 압승을 이끌었다. 2020년 당 대표 임기 종료 후에는 여의도 정치 일선에서 은퇴하고 동북아평화경제협의회 이사장을 맡았다. 지난해 10월 이재명 정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됐다.
정치권에서는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뒤를 이은 민주 세대의 대표적 인물로, 군사정권과 민주화 이후를 모두 경험하고 목도한 민주 세력의 상징적인 정치인으로 평가된다.
민주화 운동 세대 가운데서도 고(故) 김근태 전 장관 등과 함께 민주화 운동과 현실 제도권 정치에서도 정치적 영향력을 이어간 정치인으로 꼽힌다. 소신과 추진력이 강한 동시에 독선적이고 깐깐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 수석부의장의 별세에 "시대의 거목, 이 수석부의장님을 추모한다"며 애도를 표했다.
우 의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고인과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불과 얼마 전까지도 민주주의를 걱정하시던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아직 귓가에 생생한데 이렇게 황망히 우리 곁을 떠나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추모의 글을 올렸다.
우 의장은 고인과의 인연도 회고했다.
그는 1982년 민주화운동을 하다 춘천교도소에 함께 수감됐던 경험, 1988년 재야 시절 평화민주통일연구회 소속으로 평화민주당에 같이 입당한 일 등을 언급하며 고인을 "정치의 길을 함께 시작한 동지이면서 선배"라고 언급했다.
이어 "김대중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각오로 민주주의의 현장에 뛰어들었던 그날부터 38년 동안 때로는 치열하게 토론하고 때로는 서로의 어깨를 보듬으며 오직 '국민'과 '민주주의'라는 한 길을 걸어왔다"고 했다.
우 의장은 고인을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 그 자체",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으로 현장에서 답을 찾고 국민 삶을 기준으로 정치를 올바르게 세우기 위해 평생을 바치신 분"이라고 평가했다.
또 "항상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곳, 소외된 이들의 눈물이 고인 곳을 향해 시선과 발걸음을 두시던 모습으로 민주개혁세력을 이끌어 주셨다"고 회상했다.
우 의장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헌신하셨던 선배님의 열정을 결코 잊지 않겠다"며 "당신과 함께 할 수 있어 진심으로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