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의 일이다. 2003년 5월 3일, 강원일보 취재진이 북 금강산댐의 실제 모습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셔터가 눌러지는 순간, 한국 언론 사상 최초의 기록이 탄생했다. 인공위성이 하늘에서 내려다본 흐릿한 윤곽이 아니라 지상에서 직접 포착한 생생한 현실이었다. 백암OP에서 본 금강산댐의 실체, 이 사진은 사흘 뒤인 5월 6일자 강원일보 1면에 ‘최초 공개된 북한 금강산댐’이라는 제목으로 기사와 함께 실렸다. 이 보도는 단순 특종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분단의 진폭을 가늠하게 하는 한 시대의 기록이었다.
당시 기록과 진실을 향해 험한 길을 올랐던 취재 기자는 댐의 실체 포착 과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무쏘 승용차에 몸을 싣고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오르기 시작한 지 1시간. 다시 가파른 계곡을 따라 1시간가량 걸어 해발 1,100m가 넘는 중부전선 OP에 도착했다. 청명한 하늘 아래 둘러쳐진 저 멀리 협곡 사이의 금강산댐이 취재진에게 포착됐다. 연녹색 녹음이 우거진 고산 위로 솟아오른 거대한 병풍처럼 펼쳐진 금강산댐의 본체와 여수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취재 기자는 이어 산속 깊숙이 숨겨진 물덩이의 실체를 폭로했다. “여수로 앞에 북측 인부가 분주히 움직였다. 댐 본체 위에는 덤프트럭과 굴삭기가 쉴 새 없이 오갔다. 크레인도 동원됐다. 댐 정상 함몰 부분 보수공사였다. 댐 뒤편으로 담수 된 푸른 물도 한눈에 들어왔다. 1,000m가 넘는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첩첩산중 협곡 사이로 관측된 푸른 물은 댐의 담수 정도를 가늠하게 했다.” 그것은 단순한 수리시설이 아닌 북의 의도를 보여주는 증거물이었다.
북 금강산댐 건설은 1986년 추진됐다. 저수량이 26.2억 톤 규모의 사력댐이다. 전두환 정권은 북의 수공(水攻)에 대비해 평화의 댐 건설로 응수했다. 이후 금강산댐의 이상징후로 ‘겨울홍수’가 발생하고 상부 3곳이 함몰된 것이 인공위성으로 확인되면서 김대중 정권은 평화의댐 증축 공사에 들어갔다. 댐 높이는 기존 80m에서 125m로 높아졌고 저수용량 역시 기존 5.9억 톤에서 26.3억 톤으로 금강산댐의 저수량보다 1,000만 톤 많은 규모로 완공됐다.
금강산댐 관측은 DMZ 투어에서 빼놓을 수 없다. 때마침 화천군이 총연장 2.12㎞의 백암산케이블카를 운영하면서 예전에 힘겹던 접근은 관광 편의로 바뀌었고, 감시의 풍경은 조망의 대상이 됐다. 백암산케이블카는 이 기이한 변화를 상징한다. 2014년 착공해 8년 만인 2022년 마무리했다. 국내 최북단, 최고도에 위치한 이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1,178m의 백암산 정상에 오르면 국내에서 유일하게 우리의 평화의댐과 북 금강산 댐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다.
금강산댐 관광의 편리함 속에서도 그 풍경이 지닌 중량감은 가볍지 않다. DMZ는 군사적 충돌과 외교적 결빙이 낳은 세계사적 긴장의 압축판이다. 타임지가 ‘아시아의 진면목’이라 평가한 까닭도 그 역설적 아름다움 속에 숨겨진 응축된 전쟁과 대치, 분단과 아픔 때문이다. 한 쪽이 평화를 말할 때 다른 쪽은 침묵으로 답했고 세계가 냉전 유물을 철거할 때 우리는 그것을 조망하고 있다. DMZ엔 수많은 사연과 상흔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흐르고 있다.
관건은 ‘통찰’이다. 관광이 감상의 프레임이라면 통찰은 그 프레임 밖을 보는 일이다. 금강산댐 관측 길이 쉬워졌다고 풍경이 순해진 건 아니다. 수공에 맞서 수방(水防)으로 대응한 기록, 남북의 댐을 동시에 조망하는 풍경 등 현장이 주는 메시지를 읽어야 한다. 전쟁과 평화, 대결과 화해가 한 프레임 안에서 겹쳐지는 이중노출 풍경은 아무리 관광의 외피를 입더라도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 현실을 잊는 순간, 역사는 또 다른 얼굴로 되풀이된다는 경고가 댐의 침묵 속에서 들린다. 필요한 건 댐의 높이나 저수량을 재는 눈이 아니라 댐 너머의 서사를 읽어내는 통찰이다. 콘크리트 구조물 뒤에 숨겨진 이데올로기의 지층을 냉정하게 보자는 얘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