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대세는 나뉘어 지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쳐진 지 오래되면 반드시 나뉜다고 했다. 나관중의 ‘삼국연의’는 이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명멸해간 영웅호걸들의 이야기를 담은 중국 사대기서(四大奇書) 중의 백미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소설 ‘삼국지’가 존재하지만, 이 방대한 서사를 ‘시(詩)’의 형식으로 재구축한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시로 읽는 삼국지’는 은퇴 후 한시에 매료된 한 한학자가 이상석(춘천문화원 한시반 강사)씨가 그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해 내놓은 역작이다.
저자는 12년 전 은퇴와 함께 서울을 떠나 춘천의 한적한 산골로 귀촌했다. 소일거리 삼아 춘천문화원 한시반을 찾아 한시의 세계에 입문한 그는, 평소 삼국지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이를 눈여겨본 지도교수의 권유로 시작된 집필 작업은 무려 8년이 걸렸고, 50여 번의 수정 과정을 거쳐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산문 소설인 ‘삼국연의’를 율격이 엄격한 정형시인 한시로 재구성했다는 점이다. 전체 분량만 해도 시 1만970구, 글자 수로는 7만7,210자에 달한다. 오언절구로 환산하면 거의 4,000 수에 이르는 실로 방대한 작업이다. 저자는 원작의 총 120회 구성을 그대로 따르면서, 각 회의 큰 제목과 소제목만 읽어도 전체 내용을 짐작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구성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자신을 “전문 작가가 아닌 취미로 한시를 시작한 아마추어”라고 낮추며, 이 책을 “험한 산을 깎고 깊은 강을 메워 낸 볼품없는 첫 길”에 비유했다. 치열했던 영웅들의 각축전을 칠언(七言)의 시어로 승화시킨 이 책은 단순한 번역을 넘어, 한 은퇴자의 끈기 있는 도전이 만들어낸 새로운 형태의 고전 읽기를 제안한다. 삼국지의 호쾌한 서사를 시의 운율에 실어 음미하고 싶은 독자라면 일독을 권한다. 애플북 刊, 566쪽, 5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