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더초점]대형산불 대응, 급무부터 점검하라

고기연 한국산불학회 회장

해마다 봄이 다가오면 산불에 대한 우려가 반복된다. 특히 강원도는 기후와 지형, 산림 구조상 대형산불 위험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문제는 산불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 그 자체가 아니라, 다가올 대형산불을 감당할 준비가 과연 제대로 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나는 산불 대응을 이야기할 때 ‘급무(急務)’와 ‘선무(先務)’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선무는 불에 탈 만한 연료원을 줄이는 숲 관리 등 구조적 예방 대책이다. 반면 급무는 대형산불이 발생했을 때 현장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 즉각적인 대응 역량이다. 그러나 현실을 냉정하게 보면, 지금 우리는 급무에 해당하는 수단이 충분히 준비돼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급무의 핵심은 대형산불 초기 확산을 억제할 수 있는 실질적 수단을 갖추는 일이다. 현재 우리의 산불 대응은 여전히 헬기 중심이다. 매년 평균 550건 발생하는 산불 대부분을 진화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문제는 몇건 안되는 대형산불이다. 2023년 4월 강릉 경포 산불 당시, 강풍 국면에서 준비돼 있던 헬기들이 발화 초기 상당 시간 이륙하지 못했다. 바람이 강해질수록 산불은 급속히 확산되는데, 그 결정적 시기에 공중 진화의 핵심 수단이 작동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반복되곤 한다.

이 경험을 계기로 헬기의 한계를 보완할 대안으로 고정익 수송기를 활용한 산불진화 방안이 제기됐다. 이는 책상 위에서 나온 발상이 아니라, 현장 경험을 가진 관계자들과 항공 전문가들이 제시한 현실적 대안이었다. 실제로 수송기를 활용한 산불진화는 여러 국가에서 대형산불 대응 수단으로 운용되고 있다.

지난해 3월 유례없는 피해를 기록한 영남권 대형산불 이후, 모듈형 공중 산불진화 시스템(MAFFS, 일명 마프) 도입이 국회 추경을 통해 긴급 사업으로 결정됐다. 마프는 미 산림청과 공군이 합동개발한 체제로 국내도입을 위해서는 미국 공급사와 계약이 이뤄져야 하고, 그후 일정기간 소요되는 물탱크 제작, 기체에 장착을 위한 인증 등 절차를 밟은 후 2027년 2월에 국내 도입 활용될 계획이었다.

그러나 마프 도입 사업은 결국 좌초됐다. 이 사업은 늦어도 지난해까지 계약이 체결됐어야 했지만 실제로는 계약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추경까지 반영된 긴급 사업이 실행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수십억 원의 관련예산은 집행되지 못한 채 국고로 반납됐다. 이는 2022년에 이어 두 번째로 반복된 실패다.

이 지점에서 필요한 것은 비상한 각오와 책임의식이다. 전략자산을 활용한 산불 대응은 장비 하나를 사는 문제가 아니라, 산불당국 차원의 준비와 조율이 필요한 급무 과제다. 그럼에도 이를 끝내 실행하지 못했다면, 왜 준비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냉정한 성찰이 뒤따라야 한다.

강원도 산불 대응 역시 중앙정부 대책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특별자치도에 걸맞게 급무와 선무를 책임있게 구분하고, 단기·중장기 대책을 주도적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 당장 대형산불에 대비한 급무 차원의 대응 수단과, 연료 관리와 산림 구조 개선이라는 선무 과제를 병행해 설계해야 한다. 지방정부도 현재처럼 산불 진화를 전적으로 헬기 임차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성능이 검증된 진화용 비행기를 최소한 자체 확보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시점이다. 이는 지역의 산림재난 위험에 더 충분한 대응 역량을 갖추기 위한 자구책이 될 것이다.

봄은 반드시 온다. 대형산불도 다시 올 수 있다. 산불당국은 지금이라도 급무로 제시됐던 전략적 대응 수단이 왜 준비되지 못했는지 직시하고,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또다시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왜 준비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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