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특집]못난 말(馬)이 우리의 삶과 역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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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기 강원대 교수

병오년, 말이야기

◇김풍기 강원대 교수

붉은 말로 상징되는 병오년을 맞으면서 문득 적토마가 떠올랐다. 자신의 앞길을 막는 장수들을 돌파하면서 관우와 함께 했던 적토마의 기세가 느껴졌고, 역대 명가들의 말 그림에서 느끼곤 했던 기운생동이 느껴지기도 했다. 기원전 3천년 경부터 가축화되었다고 하니, 말은 오랜 세월 동안 인간과 함께 살아온 동물이다. 그런 만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든 말과 관련된 고사라든지 민속, 문화적 상징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힘도 좋으니 전투, 수송, 농경, 기마 등 다양한 용도로 쓰였다. 고대부터 우리 옆에는 늘 말이 함께 하고 있었다. 박혁거세 신화를 보면, 흰말이 꿇어앉았다가 하늘로 올라간 자리에서 발견한 붉은 알에서 태어나서 신라를 건국한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 신화에서도 말이 등장한다. 주몽이 발해의 왕자들에게 핍박을 받을 때 비루먹은 말을 잘 길러서 그것을 타고 남쪽으로 달아나 끝내 고구려를 세운다. 이 정도면 이 말들을 천마(天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말을 뜻하는 한자는 상당히 많다. 앞서 나왔던 흰 말은 백마, 검은 말은 여마(驪馬), 푸른 말은 기(騏), 붉은 말은 성(騂), 검은 갈기에 흰 말은 락(駱), 황색과 백색 털이 섞인 말은 비(駓), 이마에 흰 점이 박혀있으면 작(馰), 얼룩말은 박(駁) 등 색깔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하기도 한다. 크기에 따라 키가 8척 이상이면 용(龍), 7척 이상이면 래(騋), 6척 이상이면 마(馬)라고 부른다. 능력에 따라 용마(龍馬), 천마, 신마(神馬), 노마(駑馬)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용마는 인덕(仁德)을 갖춘 날개 달린 말이라면, 천마와 신마는 태평성대가 왔을 때 나타난다는 말이다.

한 시대를 호령하는 영웅이 나타나면 반드시 천리마도 나타난다. 강원도 삼척, 영월, 홍천, 강릉 등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널리 전승되는 아기장수 설화가 있다. 평범한 집안에 태어난 아기의 비범성 때문에 일어난 비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갓난아기의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걸 보고 부모는 이 아기가 나중에 역적이 될까 두려워 살해한다. 그 아기를 뒷산에 묻었는데, 어디선가 홀연 날랜 말 한 마리가 나타나서 무덤 주변을 맴돌다가 그 옆에서 죽었다. 그 말을 묻어준 곳을 흔히 말무덤이라고 부른다. 조선이라고 하는 강고한 국가 이념과 체제 속에서 혁명을 통해 세상을 바꾸어보려는 필부들의 열망은 이렇게 스러지곤 했다. 그들의 혁명성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동반자가 등장하는데, 아기장수 설화에서는 바로 말이다.

오랜 세월 변혁에 대한 필부들의 열망은 강고한 억압 속에서도 계속 일어나더니, 급기야 권력자들을 국민의 힘으로 몰아내는 세계적 민주주의의 질서를 세우기도 했다. 그것은 용마나 천마, 신마, 천리마와 같은 엄청난 능력을 가진 말을 탄 영웅이 만든 것이 아니라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말을 타고 다니는 장삼이사(張三李四)가 힘을 모아 만든 것이어서 우리 역사에 서도 길이 빛나는 성과라 할 수 있다.

평범한 말 혹은 능력이 떨어지는 말을 노마(駑馬)라고 한다. 어쩌면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말은 노마거나 그 범주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는 존재들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과 역사는 노마처럼 조금은 모자란 듯이 보이지만 일상을 떠받치는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순자(荀子) ‘수신(修身)’편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천리마는 하루에 천 리를 가지만, 걸음이 둔한 노마도 열흘을 가면 천 리에 도달할 수 있다.” 흔히 노마십가(駑馬十駕)라는 사자성어로 알려진 이 말은 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말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훌륭한 성과를 이룰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병오년을 맞아 거친 세파를 헤치고 거침없이 달려가는 붉은 말처럼 늘 기운차게 살아가기를 기원해본다. 비록 우리의 인생이 적토마와 같은 붉은 말이 아니라 조금은 모자라는 노마의 신세일지라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달려가다 보면 언젠가는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리라는 믿음으로 살아갈 일이다. 위대한 역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게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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