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수면제 먹여 잠들게 한 뒤 부모와 아내, 두 딸 등 일가족 5명 살해한 50대 항소심도 무기징역

재판부 "피고인 생명 박탈보다는 중형 선고해 영구히 사회 격리"
"살아 숨 쉬는 모든 순간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속죄하라"

◇부모와 처자식 등 일가족 5명을 살해해 살인 및 존속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50대 가장 A씨가 17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경기도 용인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오고 있다. 2025.4.17. 사진=연합뉴스.
◇부모와 처자식 등 일가족 5명을 살해해 살인 및 존속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50대 가장 A씨가 17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경기도 용인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오고 있다. 2025.4.17. 사진=연합뉴스.

속보=수면제 넣은 유제품 먹이고 80대 부모와 50대 아내, 10~20대 두 딸 등 일가족 5명을 살해한 50대가 항소심에서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수원고법 형사2-1부(김민기 김종우 박광서 고법판사)는 24일 50대 이모 씨의 존속살해 및 살인,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등 혐의 사건 항소심에서 재판부 직권으로 원심 판결을 파기하되 원심과 동일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1심 판결 선고 후 피고인의 업무상 배임죄 등 사건 판결이 확정돼 후단 경합범 관계에 있어 원심은 파기돼야 한다"며 파기 사유를 밝혔다. 양형에 대해서는 "가족을 살해하는 과정에서 두 딸과 배우자가 저항했으나 멈추지 않았다"며 "차마 입에 담기조차 버거운 비통한 범행"이라고 했다.

또 "아무리 곱씹어 생각해도 자신 때문에 가족들이 수십억원의 빚을 지고 힘들게 살게 될 생각에 범행했다는 동기는 납득할 수 없고 용납할 수도 없다"며 "생계를 책임져 온 가장이라고 해도 감히 그리할 수는 없다"고 꾸짖었다.

재판부는 "가정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소중한 공동체로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가족은 서로를 신뢰하고 지지하며 엄혹한 시기에 버팀목이 되어주는 존재"라며 "피고인의 범행은 한 가정을 파괴한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지킨 보편적 가치를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또 "피고인의 범행은 과연 우리 사회가 이를 용인할 수 있는지 묻고 있다"며 "(저는) 이 질문에 답하기가 몹시 두렵다"고 했다.

재판장은 범행 당시가 떠올랐는지 이따금 발언을 멈추기도 했다.

재판부는 사형 선고 여부를 두고는 "대법원은 누구라도 인정할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한해 사형 선고를 허용하는 엄격한 법리를 확립해 왔다"며 2004년 이후 사형이 확정된 15개 사건의 주요 양형 요소를 분석, 제시했다.

재판부는 사형 선고 사건들이 "주로 강도강간 등 중대범죄, 살인죄가 결합돼 있거나 방화, 흉기 사용 등 범행 수법이 잔혹한 사건들로 이 사건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며 "올해 이 사건과 유사하게 경제적 어려움에 자녀 2명을 살해하고 배우자의 자살을 방조한 사건은 무기징역이 확정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에 대해 "검사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피고인을 엄중한 형으로 처벌할 사정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누구라도 수긍할 만큼 특별한 사정이 존재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생명을 박탈하는 것보다 사형 이외 형벌로서 중한 형을 선고함으로써 영구히 사회에 격리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피해자들에 대한 명복을 빌었고, 피고인에게는 "살아 숨 쉬는 모든 순간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속죄하라"고 말했다.

옥색 수의를 입은 채 피고인석에 서 있던 이씨는 재판 내내 눈을 감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부모와 처자식 등 일가족 5명을 살해한 50대 가장 A씨가 지난달 24일 경기도 용인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025.4.17. 사진=연합뉴스.

이씨는 올해 4월 14일 밤 용인시 수지구 아파트 자택에서 80대 부모와 50대 아내, 10~20대 두 딸 등 자기 가족 5명에게 수면제를 먹여 잠들게 한 뒤 이들을 차례로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주택건설업체 대표였던 이씨는 광주광역시 일대 민간아파트 신축 및 분양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지난 3월 24일 홍보관이 압수수색을 당하게 되고 이씨의 경찰 수사 소식을 알게 된 계약자들로부터 민사소송 및 형사고소를 당했다.

이씨는 이로 인해 수십억원 상당의 채무를 부담하게 돼 경제적 어려움을 겪자 수면제 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계획하다가, 본인이 죽으면 채무가 가족들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피해자들을 먼저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받아 보관하던 수면제를 가루약으로 만들 목적으로 지난 3월 31일 알약 분쇄기를 구입했다. 잔혹한 살인 범죄를 벌이기 2주 전이었다.

이씨는 이후 4월 9일 보관하던 수면제 수십 정 중 일부를 분쇄기로 갈아 약봉지에 나누어 담았고, 범행 직전과 당일인 4월 13∼14일에는 발효 유제품 여러 개를 구입했다.

이어 4월 14일 저녁 용인시 자택에서 80대 부모에게는 마시는 유제품을, 50대 아내와 10∼20대인 두 딸에게는 떠먹는 유제품을 먹게 한 뒤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는 당일 밤 9시 30분부터 이튿날 0시 10분까지 2시간 40분에 걸쳐 잠이 든 피해자들을 차례로 목 졸라 살해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범행 직후 "모두를 죽이고 나도 죽겠다"는 취지의 메모를 남기고 이튿날인 15일 오전 1시께 승용차를 이용해 사업차 머무는 광주시 소재 오피스텔로 달아났다. 그러면서 다른 가족에게 사건을 암시하는 내용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전송했다.

사건을 암시하는 내용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받은 가족은 같은 날 오전 9시 55분 119에 신고했다.

경찰 검거 당시 이씨는 자살 시도로 인해 의식이 불분명한 상태였으나 병원에서 회복한 이후 조사 과정에서 범행을 털어놓았다.

◇부모와 처자식 등 일가족 5명을 살해한 50대 가장 A씨가 지난 4월 24일 경기도 용인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경기 용인서부경찰서는 살인 및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한 A씨를 24일 오전 수원지검에 송치했다. 2025.4.24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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