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압록강 2,000리를 가다]⑫김명희 김삿갓 고려식품 대표

창바이조선족자치현에서 30년간 공장 운영해
조선족 어머니의 장맛 이어, 언어와 문화 지켜

◇창바이조선족자치현에서 만난 김명희(58) 김삿갓 고려식품 대표.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였던 중국 지린성 지안 일대. 이곳에는 광개토대왕릉비와 장군왕릉을 비롯해 고구려의 위상을 보여주는 핵심 유적들이 모여 있다.

이곳에는 하늘을 높이 솟아 주변을 압도하는 광개토대왕릉비가 세워져 있었고, 장수왕릉이 푸른 잔디와 맑은 하늘 아래 자리하고 있었다. 흙과 풀이 뒤덮인 고구려의 옛 성벽 잔해와 그 주변에 놓인 고인돌까지 백두산에서 이어 내려온 산세와 압록강 변의 고구려 흔적들은 천년의 세월을 딛고 이 땅에 조선족의 문화와 생활이 굳건히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백두산 아래 조선족 공동체의 생활 문화가 집약된 창바이현 민속체험관에서 우리는 그 끈기 정신을 이어가는 한 명의 장인을 만났다. 창바이현 조선족 민속체험관에서 만난 김명희(58) 김삿갓 고려식품의 대표가 주인공이다. 그는 30여년 넘게 장을 빚어왔다고 한다. 한국 전통 한옥의 형태를 띤 건물이 자리한 공장 마당에는 수많은 검은 장독대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장독들 사이로 스며든 장맛의 시간은 그대로 그의 인생을 담고 있었다. 함경도 출신인 그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서 배운 장 담그기 방식을 지금까지 지켜왔고, 장맛을 통해 조선족 공동체의 음식을 잇고 있다.

김 대표의 메주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네모난 형태와 다르게 작고 둥글게 만들어 띄운다. 둥근 메주에 대해 묻자 김 대표는 단순한 전통의 차이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여기 메주는 한국처럼 네모로 안 만들어요. 나는 메주를 작게 또 좀 허하게 만들어 띄워요. 이게 우리 집 전통 방식이기도 한데 지금은 품질 때문에 더더욱 이렇게 해야 해요. 메주 뜰 때 유해균이 조금만 있어도 검사를 못 통과하거든요. 작게 띄워야 공기가 잘 통해요. 그래서 이 방식이 더 안전하고 장맛도 옛날 그 맛이 나요.”

◇창바이현 민속체험관에 위치한 김삿갓 고려식품 공장.

장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그는 자본도 장사 경험도 없었다. “처음에는 돈이 없어서 원료를 싸게 팔아야 할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단골들한테는 정성 들였죠. 물건을 되돌리는 사람이 있으면 오히려 더 친절하게 했고요.” 김 대표에게 장사는 기술이 아니라 정성이 먼저였고 신뢰는 그렇게 쌓였다.

사업을 하면서 힘든 점이 많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말로 다 못 해요. 넘어지고 일어서는 걸 계속한 거죠. 버티는 수밖에 없어요.”라고 웃으며 답했다. 그가 말하는 ‘버팀’은 단순한 경제활동이 아니었다. 도시화와 시대 변화 속에서도 전통을 붙잡으려는 방식이자 동시에 조선족으로서 언어와 문화가 빠르게 사라지는 시대에 그것을 지켜내려는 시간이다.

고구려의 성벽과 고분들은 지금 중국 땅에 남아 있지만 국가를 세운 사람들, 그들이 쓰던 언어와 생활 방식은 한국과 이어져 있다. 유적의 위치가 아닌 역사의 정통성이 고구려를 한국사로 남게 하는 이유다. 국경과 체제, 시대가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는 그 뿌리처럼 창바이현에서 장맛을 지켜온 김명희 대표의 삶 역시 경계를 넘어 한민족의 정체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중국 지린성=홍예빈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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