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내린 비에도 불구하고 강원 강릉지역 가뭄 해갈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취약계층이 더욱 심각한 사회적 재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 5월 출산을 한 강릉지역 외국인 노동자 A씨는 네 달배기 아이 분유조차 제대로 먹이지 못한 채 한달간 가뭄 시기를 힘겹게 버텼다. 동사무소에서 생수를 배급받으려고 했지만, 일정한 주소지가 없이 일용노동에 종사하는 A씨는 어느 동사무소 관할 주민으로도 포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없는 살림을 쪼개 구매한 생수로 아기의 목을 축였지만, 물은 언제나 모자랐다. A씨는 "출산과 수술 이후 바로 닥쳐온 가뭄 재난에 아이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발만 굴렀다"며 "수술 후 아픈 자리는 챙길 생각도 못한 채 불안하고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토로했다. A씨는 결국 가뭄 시작 이후 1달여가 지난 17일에서야 강릉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서 생수 두 통을 배급받을 수 있게 됐다.
강릉 입암동에서 기초생활수급을 받고 있는 80대 B씨는 간헐적 단수가 시작된 이후 용변조차 마음 편히 보지 못하고 있다. 용변을 보기 위해서는 기저귀를 간 뒤 손을 씻을 물, 피부를 닦고 더러워진 옷을 빨래할 물이 필요하지만, 질병으로 인해 누워서 생활하는 B씨는 스스로 물을 받아둘 수 조차 없기 때문이다. 방문하는 요양보호사가 물티슈로 피부를 닦아주고, 일주일에 한번씩 빨래를 모아 세탁기에 돌리고 있지만 혼자 지내는 시간에는 속수무책으로 가뭄 재난을 감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의 인권, 노동 전문가들은 강릉의 재난상황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현경 강릉노동인권센터장은 "평소 지방 행정의 불평등한 체계가 재난을 통해 드러나고, 사회적 취약계층이 또 한번의 고통을 겪고 있는 셈"이라며 "재난 상황을 일원화해서 주민의 삶을 챙기는 포괄적인 지역 재난대응체계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최복규 강릉시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장은 "가뭄 재난 상황에서 물을 제대로 배급받을 수 없는 이주민들의 고통이 매우 컸다"며 "재난 대응과 동시에 의료, 복지 지원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전국재해구호협회·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을 통해 전 국민 대상 긴급 모금 캠페인을 실시하고, 강릉시와 함께 취약계층 대상 생수 배부 활동 등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