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전 한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필자가 있는 인제에 놀러오고 싶으니, 좋은 곳에 예약을 해달라는 말이었다. 오랜만에 골프도 하고 밥도 먹자는 기분좋은 제안이었지만 인제에는 골프장이 한 곳도 없다.
인제군은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중 면적이 두번째로 넓다. 가장 넓은 곳은 인접 지자체인 홍천군이다. 홍천에도 근무한 경험이 있어 그 곳 상황을 아는데, 현재 운영중인 골프장만 8곳이고 또 2곳이 공사중이라 곧 골프장 10개가 된다.
골프하고 싶은데 경기장이 없어 아쉽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어떤 지역보다 인제군은 각종 규제에 막혀 시도조차 못하는 관광사업들이 수두룩하며, 이것이 인구 감소와 지역소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문제다.
군사시설 보호구역, 상수원 보호구역, 자연환경보전지역, 백두대간보호지역, 문화재보호구역 등 인제군 전체 면적의 186%가 규제지역이다. 웬만한 땅은 2중3중 규제를 뚫어야 개발할 수 있다는 의미다. 또 군 전체 면적의 90%가 산림으로, 지역 개발에 필요한 가용토지가 절대 부족하다. 수도권 상수원 보호 때문에 ‘굴뚝산업’이 전무하니, 관광형 성장동력이 절실하지만 넘어야 할 벽이 너무 많다.
인제에도 현재 추진중인 관광단지가 있다. 인제군 첫 골프장을 포함한 ‘정자리 대규모 관광단지 조성사업’이 2021년 10월 민간업체와 MOU를 체결한 후 아직까지 첫 삽을 뜨지 못하고 있다.
사업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생태환경도 등급 때문이다. 추진 초기 전체 사업 대상지 면적 359만여㎡ 중 57.6%인 207만여㎡가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이었다.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은 개발 및 건축물 공사가 불가능하다.
정자리 사업구간에 멸종위기야생생물이나 보전가치가 큰 생물자원이 없다고 분석한 인제군은 국립생태원과 협의하며 생태자연도 등급 조정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장 조사를 거쳐 지난해말까지 126만㎡가 2등급으로 조정됐다. 하지만 아직도 전체 사업 면적 중 21.8%인 81만여㎡를 조정하지 못해 어려움을 겼고 있다. 2023년까지는 생태자연도에 침식분지 기준이 적용됐으나 24년 이후 이 기준이 삭제됐음에도 등급 하향 조정은 하세월이다.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인제에는 내설악 대청봉을 비롯해 곰배령, 대암산용늪, 백담사 탐방로, 방태산 아침가리계곡, 자작나무숲 등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이 워낙 많고, 친환경 관광지로 잘 보존·관리되고 있다. 보존할 곳은 인력을 더 투입해 관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며, 접근성이 좋은 곳은 체류형 관광지로 활용돼야 만 지역에 활기가 돌 것이다. 인제IC에서 10분, 인제읍에서 40분 거리의 정자리 관광단지 사업에 대한 주민 찬성율과 기대심리 지수 역시 상당히 높다.
각종 사업마다 건건이 규제에 막히다 보니, 백담사 탐방로를친환경 교통수단 추진이라든지 소양호 상류를 활용한 축제와 사업 개발 등에서 지자체도 이제는 사업 추진이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이재명대통령이 지난 주말 강원특별자치도를 방문했다. ‘강원 타운홀 미팅’에서 강원도민에 대한 보상을 언급했다. 강원도 살고, 접경지역에 살아가는게 '악성 운명'이라고 생각되지 않도록 정부에서 각별한 배려를 하겠다는 말, 큰 균형발전의 축을 지역으로 옮겨야한다는 말을 환영하며, 격하게 공감한다. 2027년말이면 서울-속초 간 동서고속철도가 개통하고 두 개의 역이 들어설 인제군은 지금 매우 중요한 시점에 있다. 교통망 개선으로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생활인구가 유입되거나 또는 유출될 것이다. 강원살이가 심심하고 따분해 떠나면 지역은 위기가 온다. 가치있는 땅과 물을 훌륭하게 보존하며 희생해 온 도민들을 위해 이제는 정부가 규제의 벽을 과감히 허물어 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