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세계의 지도자들은 국가들이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의 규칙을 만들어야 했다. 새로운 질서의 리더를 자임한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이 제시한 평화의 해법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세계의 교역로를 보호하고 세상의 물건을 그들의 돈으로 사주는 것이었다. 미국을 따르는 국가들은 미국이 원하는 물건들을 만들어 파는 대가로 미국의 돈을 받아 재건을 위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것이 미국이 주도해 온 세계 평화의 밑그림이었다.
그러나 세계는 지금 미국 스스로 자신이 그린 번영의 청사진을 던져버리는 엄청난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 트럼프 정권은 자유무역 대신 미국이 정하는 일방적 관세를 청구하고 있다. 자유무역을 당연하게 생각하던 국가들은 미국의 선처를 호소하는 처지가 되었다. 어제까지 미국의 친구였던 나라의 지도자들은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면서도 그들의 한계에 좌절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관세정책이 진짜 노리는 것은 각국의 핵심 첨단 산업과 좋은 일자리다. 이를 위해 미국은 아예 세계 최고의 공장들을 자국으로 옮길 것을 원한다. 미국의 요구가 그대로 관철되면 국가들의 주력 산업들은 전례 없는 도전적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두고 새로운 생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작은 나라가 크고 강한 나라를 상대로 번영을 누리려면 나라와 국민이 똑똑해야 한다. 강대국에 없는 확실한 생존의 무기가 필요하다. 지혜로운 국가는 대체 불가능한 생존 역량을 키워야 한다. 그러한 역량을 구축하지 못한 국가들은 강대국의 그늘에서 숨죽이는 숙명을 감수해야 한다.
역설적으로 작지만 강한 나라의 생존 전략은 상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유능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가장 강력한 생존의 무기는 사람의 힘일 수밖에 없다. 곳곳에 구축한 강력한 인재 역량만이 나라의 장래를 보장할 수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우리는 사람의 힘이 국가들 간의 협상에 얼마나 결정적인 지렛대가 될 수 있는지를 절감했다. 조선산업은 우리가 육성한 숙련된 노동자와 기술자들이 있기에 관세 협상의 무기가 될 수 있었다. 반도체 산업의 첨단 기술 역량이 없었다면, 미국이 우리에게 낮은 보편 관세를 허용할 이유가 없다. 유럽의 안보는 한국의 막강한 방위산업 기술자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우리가 일군 문화적 자긍심과 한류 인재들이 없었다면 일본이 우리를 이렇게 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한국이 주도권을 쥔 산업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대한민국이 키운 인재, 기술자, 기능인들이 세상에서 최고라는 것이다. 힘든 무역 협상에서 국가의 자존심을 지킨 것은 주요 산업에서 최고가 된 사람의 힘이었다. 인재대국을 위한 백년대계 전략이 꼭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은 우리가 피땀으로 일군 산업, 기업, 인재들과 더 높은 수준의 협력을 원하고 있다. 앞으로 계속 이어질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도 한국과 미국이 함께 승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서로가 절실히 원하는 기업과 인재들이 협력하면서 번영의 길을 개척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키워낸 최고의 회사와 인재들을 미국에 넘기면 10년 후 이곳에 남는 것은 무엇인지도 깊이 생각하고 이에 대비해야 한다. 공장과 설비가 넘어가도 유지될 수 있는 인재 역량을 키우지 못한다면, 나라의 쇠퇴는 정해진 운명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이 원하는 세계 질서는 트럼프가 간다고 끝날 소나기가 아니다. 끝을 알 수 없는 긴 가뭄과 경제 기근의 시작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이어질 세상의 큰 변화에 제대로 대비하는 국가적 인재 전략이 필요한 이유이다. 주요 핵심 산업과 경제 영역에서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인재의 나라를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국가가 심혈을 기울여야 할 최우선 과제이다. 인재대국이 우리의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