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청봉] 군민기본소득, 지역 소멸 위기를 극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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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석 정선주재 부국장

강원도 깊은 산골에 위치한 정선군은 오랫동안 ‘사라질지 모를 지역’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왔다. 석탄 산업이 문을 닫으면서 경제는 무너졌고, 고속도로 하나 없는 지형은 정선을 ‘외딴 섬’으로 만들었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떠났고, 남은 것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뿐이었다. 지도를 펼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정선은 쉽게 잊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최근 정선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7월,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30일 기자 간담회에서 “인구소멸 위기가 심각한 지역에는 예산 배정에 가중치를 두겠다”고 밝히며, 전국 228개 기초지자체 가운데 단 한 곳, 정선군을 직접 언급했다. 이는 단순한 발언이 아니다. 정선이 그동안 절박하게 추진해 온 정책 실험, 특히 ‘군민기본소득’이 이제는 국가 차원의 의제로 떠올랐다는 의미다

정선군이 지난 3년간 준비해온 군민기본소득은 단순한 현금 지원이 아니다. 모든 군민에게 일정 금액을 정기적으로 지급하되, 지역 상점과 전통시장에서만 사용하도록 설계됐다. 돈이 군민의 지갑을 거쳐 다시 지역으로 흘러가도록 만든 지역경제 순환 장치다.

지난 3월, 정선군은 강원특별자치도 최초로 전 군민에게 ‘민생회복지원금’을 지급했다. 강원랜드 주식 배당금이라는 자체 재원을 활용해 군민 1인당 30만원 상당의 지역화폐 정선아리랑상품권을 나눠준 것이다. 중앙정부의 지원도, 빚을 내는 지방채 발행도 없었다. 그 결과 지역 상권은 빠르게 살아났고, 군민들도 실질적인 변화를 체감했다. 이 경험은 정선군민기본소득이 공허한 구호가 아닌, 충분히 실현 가능한 정책임을 증명했다

그럼에도 이 제도는 아직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2021년 말부터 보건복지부 심의를 세 차례 신청했지만, 돌아온 답은 ‘재협의’뿐이었다. 저소득층 지원 사업과의 중복 우려, 재정 안정성 문제 등이 이유였다.

그러나 정선의 경우는 다르다. 군민기본소득은 특정 계층이 아닌 모든 군민을 대상으로 한다. 재원도 불안정하지 않다. 강원랜드 배당금이라는 자산은 정선이 가진 확실한 ‘자주재원’이다. 이는 다른 지역의 복지 정책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징이며, 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완결형 모델’이다

‘지방소멸’은 서서히 진행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순식간에 무너지는 균열처럼 찾아온다. 군민기본소득은 이미 설계가 끝났고, 예산 확보도 충분히 가능하다. 무엇보다 군민적 공감대가 이미 마련돼 있다. 더 이상 행정 절차라는 이유로 미뤄서는 안 된다. 만약 내년 시행이 좌초된다면, 정선은 다시 소멸의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지금이야말로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 할 수 있다.

정선군의 실험은 단지 한 지역의 몸부림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곳곳의 농산촌과 소도시들이 같은 위기를 겪고 있다. 정선이 보여준 군민기본소득은 ‘돈을 뿌리는 포퓰리즘’이 아니라, 지역 스스로 경제를 살리고 공동체를 지키려는 구조적 대안인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의 역할은 분명하다. 정선이 마련한 해법을 더 이상 ‘실험’으로만 남겨두지 말고, 제도적으로 보장해 전국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정선이 정부의 승인을 얻는다면, 그것은 정선만 살리는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 지방의 미래를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소멸의 끝자락에서 길을 찾은 정선의 도전은 이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균형발전의 미래가 걸려 있다.

군민기본소득은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정선을 비롯한 지방의 생존을 위한 약속이다. 강원도의 작은 산골에서 시작된 이 실험이 대한민국 전체의 희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이제 중앙 정부가 응답해야 한다. 정부는 시기가 늦어 지방소멸을 막을 기회를 놓치고야 후회하는 만시지탄(晚時之歎)의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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