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전 11시, 중국 단둥시의 한 골목. 압록강이 내려다보이는 이 도시에 터를 잡고 명태 알탕집을 운영하는 이초선(59) 시인이 국물 간을 맞추고 있다. 20년째 이어온 일상이다. “감성이요? 어릴 적부터 있었어요. 문학을 좋아했죠. 근데 그동안은 돈 버는 데, 생활하는 데 집중하다 보니까 많이 잊고 살았던 것 같아요.” 연변에서 태어난 그는 2004년 오빠를 따라 단동으로 이주했다. 그해 지금의 명태알탕집을 열었다. 시를 다시 붙잡게 된 건 2019년 무렵. 중국 SNS 위챗(Wechat) 문학방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였다. “그 무렵 위챗에 문학방이 많아졌어요. 거기서 글쓰기를 하다가, 한국 문예지에 응모를 하게 됐고 등단하게 됐죠. 2019년 가을쯤이에요.”
그는 등단 이후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감정의 변화가 컸다. 책을 읽고 시를 배우면서, 한동안 멀어졌던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그동안 일하고 돈 버는 데 집중하느라 많은 걸 포기했어요. 근데 나이가 들고, 50 넘으니까 마음이 허전해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책을 읽게 됐고, 시도 쓰게 된 거예요.” 이초선 시인의 시는 대부분 자신의 감정에서 출발한다. 특정한 주제를 정하지 않고, 산에 오르다 떠오른 기억이나 구름을 볼 때의 감성, 또는 생활 속 우울했던 순간들이 시로 표현된다. “그냥 그때그때 감정에 따라 써요. 어떤 꽃을 봤을 때의 느낌, 혼자 있을 때의 생각, 또 우울했던 날도… 그런 감성들이 시가 되는 것 같아요.”

명태 알탕과 시 쓰기 사이의 닮은 점을 묻자, 그녀는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유사점은 별로 없다고 봐요. 시는 감성으로 쓰는 거고, 국은 간을 맞춰야 하잖아요. 하하. 국은 맛이 안 맞으면 안 되는데, 시는 조금 모자라도 괜찮을 때가 있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세계가 함께 존재하는 그녀의 삶은 단단하다. 식당일로 하루를 채우고, 저녁이 되면 책을 펴고, 조용히 감정을 내려적는 일상. 그 사이에 흐르는 시간의 결은, 시가 아니면 잡아낼 수 없는 종류의 것이기도 하다. “우리말로 시를 쓴다는 게, 나를 잊지 않게 해줘요” 그녀는 지금 단동에 살지만, ‘우리말’을 잊지 않는다. 그 말은 곧 자신이 자라온 삶의 언어다. “문학을 하다 보니까 우리말에 더 애착이 생겨요. 말이 주는 감정이 있어요.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게 해주는 느낌이에요.”
압록강과 철조망, 단동이라는 공간성이 시 속에 담기느냐는 질문에는 “많이 쓰지는 않아요”라며 조심스럽게 웃었다. 간혹 식당 벽에 붙어있는 ‘부교’ 같은 시에 그가 품은 ‘경계의 감정’ 같은 것이 표출되기도 하지만, 그녀는 대체로 자신의 내면 감정에 더 집중한다. “다섯시 반의 노을, 그 시가 참 마음에 들어요” 이초선 시인은 자신이 쓴 시 중에서 ‘다섯시 반의 노을’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카페, 선그라스를 멋지게 쓴 남자, 국화꽃 한 송이와 낙엽 같은 손길. 현실에선 보기 어려운 장면이지만, 시에서는 가능했다. “그냥… 그런 상상을 해봤어요. 언제라도 허물없이 마주 앉아, ‘삶이 당신을 속일지라도’ 같은 구절 읊으며 시간 붙잡고… 그런 거요.” 시 안에서는 잠깐이라도 설레고, 외롭다고 투정해도 되는 공간이 있었다. 그 시가 바로 그녀에게는 저녁 무렵 노을 같은 존재였다.
이초선 시인은 지금도 명태 알탕을 끓이고, 저녁이면 책장을 넘긴다. 그리고 조용히 시를 쓴다.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문학방에 올리지 않아도, 그 하루의 감정을 글로 묶는다. 시를 쓴다는 건, 그에게 다가오는 또 다른 온기인 셈이다. 국물로도 데우지 못한 마음 한 구석을, 시로 데우는 일. 그의 식당은 단순한 음식점이 아니다. 국경을 넘나드는 삶 속에서 모국어로 감정을 지켜내는, 작은 문학의 공간이다.
중국 단둥시=오석기기자 sgtoh@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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