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

[언중언]속초발 카페리

속초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바닷길이 다시 열린다. 1년5개월의 단절을 뒤로하고, 속초항 카페리 정기항로가 오는 8월 재개된다는 소식이다. 긴 침묵 끝의 귀환이 반갑다. 그러나 그 반가움만으로 그쳐서는 곤란하다. 옛 항로의 실패가 단지 외부 변수 탓이었다는 식의 자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바다다. ▼항해에 앞서 묵직하게 떠오르는 말이 있다. 정상즉패(靜賞則敗). ‘고요할 때 오히려 패배가 잉태된다’는 이 고사처럼, 지난 카페리 노선은 출항 당시의 들뜬 낙관에 취해 전환점 없이 침몰했다. 관광객 없는 관광항, 물동량 없는 물류항은 바다 위의 신기루였고, ‘속초발 국제항로’란 간판은 방치된 항만과 허물어진 기대만 남겼다. 지금 필요한 건 부활이 아니라 전환이다. 실패의 기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새 항로의 항법을 다시 쓰는 일이다. ▼새롭게 투입될 ‘GNLst Grace’호는 1만6,000톤급 중형 카페리로, 승객 570명과 150TEU의 화물, 350대의 차량을 실을 수 있다고 한다. 숫자만 놓고 보면 대단한 스펙이다. 하지만 해운업계에서 진짜 무게는 선박의 톤수가 아니라 ‘항로의 신뢰’에서 나온다. 아무리 큰 배도 목적지를 잃으면 그저 바다 위의 덩치일 뿐이다. 주 1회의 시범운항이 향후 주 2회로 확대된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이 노선이 단지 ‘있으니 타는’ 항로가 아니라 ‘기다리는 길’로 자리 잡아야 하지 않을까. ▼속초시와 강원특별자치도는 이 항로를 지역경제의 ‘성장 동력’이라 부른다. 그렇지만 동력은 방향이 맞아야 추진된다. 정기항로가 단지 해상교통망의 복원에 그친다면 과거의 전철을 반복할 수 있다. 관광과 물류를 하나의 축으로 삼아야 하고, 중국·러시아와의 다자 해운체계를 고도화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크루즈 산업으로의 확장까지 염두에 두고 ‘속초항의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할 때다. 속초발 카페리는 단순한 배편이 아니다. 이 배가 닿는 곳이 곧 속초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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