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월요칼럼]인생은 공부다

김흥술 전 오죽헌시립박물관장

가까운 지인 몇이 월 1회 책 한 권 읽는 책모임을 하고 있다. 말이 책 모임이지 한 달에 한 번 핑계 삼아 하는 친목 모임이다. 돌아가면서 한 사람이 그달의 책을 선정하고 모임 비용도 모두 부담한다. 그렇게 헐렁한 책 모임이지만 시간이 쌓이니 독서량도 늘어 간다. 최근에 읽은 책이 ‘장정일의 공부’ 였다. 인생은 무엇인가? 인생은 공부이다. 작가는 공부 중에 최상의 공부는 무지를 참을 수 없는 자발적인 욕구와 앎의 필요를 느껴서 하는 공부라 한다.

이 책의 시작은 ‘잠 못 이룬 그 밤, 잠 못 이룬 사람’이라는 제명으로 한 외국인 지식인이 바라본 한국사회에 대한 비평으로 시작된다. 한국 대학 사회의 권위적 모습을 체득한 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외국인 지식인의 인식은 한국 사회의 온갖 고질을 들여다보고 고치기 위해서 우리가 고심해 보아야 할 과제 중 하나이다.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와 서열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사회에 가득한 일상적인 폭력이 모두 군대로부터 기인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군대에서 일어나는 인격 몰수의 습성이 제대 후에도 체화되어 여성과 어린아이에 대한 남성의 가부장적 태도를 구축하고, 학교와 직장, 사회관계 전체를 서열화. 기계화한다고 비평하고 있다. 호국보훈의 달 유월에 우리가 다시 돌아보아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책은 모두 23개의 소주제로 지식이 지식의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한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적극적인 투쟁으로서 공부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무지를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 불혹의 나이에 공부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우선 자신의 무지를 밝히기 위해, 극단으로 가기 위해, 확실하게 편들기 위해, 진짜 중용을 찾기 위해! 라고 밝히고 있다.

중용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 그것은 사유와 고민의 산물이 아니라 그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음을 뜻할 뿐이라고 비판한다. 중용의 미덕이 실제로는 무지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그의 공부는 ‘알고 싶다’는 아주 단순한 욕망에서 시작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공부란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한 한 때(청소년기)의 고역’ 정도로 치부되어 온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그는 공부는 좋은 사람, 상식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한다. 민주주의 사회는 의견과 의견이 부딪치는 사회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서는 ‘나만 옳다’는 독단에 빠져 상대의 논리에 귀를 닫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서로의 개념과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대화가 어렵고 서로 간의 차이를 인정할 수 없다. 이런 때문에 민주주의는 기만과 독선에 병드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잊고 있던 공부의 진짜 목적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세속적인 성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린 공부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책에서 제시되는 화두는 모두 우리의 의식과 참신성과 창의력을 짓누르는 정형화된 기억에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주제별로 모으면 봉건성과 국가주의, 양심적 병역 거부, 역사 청산, 마키아벨리즘, 근대와 민족주의, 친일과 문학, 미국 극우파, 타성 앞에 법의 무력함, 시오니즘 등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늘 논란의 중심이 되는 개념들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용어를 정립함으로써 정형화된 기억에서 벗어나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이 책은 절실하게 독서의 힘을 보여주는 책이다. 하나의 화두를 풀기 위해 수십, 수백 권의 책을 읽으며 자기 생각을 정리해 가는 것,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공부는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 속에 공부의 재미를 찾아갈 수 있다. 인생이 공부라는데, 뜨거운 여름 책을 읽어야 할 것 같다.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하여,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 풍요로운 삶을 위해 공부해야 한다. 가정, 학교, 사회가 모두 공부하는 모습이면 좋겠다.

지선 1년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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