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정회철의 우리 술 이야기]전통주의 종류 – 탁주

5.전통주의 종류 – 탁주

한국 전통주의 종류로는 탁주, 청주, 증류식 소주, 과실주, 과하주 등이 있다. 탁주, 청주, 과실주를 ‘발효주’라고 하여, 이러한 발효주를 열을 가해 증류한 술을 ‘증류주’라고 말한다. 한국의 증류주로는 소주가 있다. ‘과하주’는 발효주에 증류식 소주를 첨가해 함께 발효시키는 혼양주이다.

용수

■물 탄 탁주와 물 타지 않은 탁주=탁주는 말 그대로 혼탁한 - 맑지 않고 흐린 술을 의미한다. 탁주는 ‘물 탄 탁주’와 ‘물 타지 않은 탁주’로 나눌 수 있다. 옛날에는 옹기에서 발효가 끝나면 용수를 박은 후, 가운데 고인 맑은 술(청주)을 떠내고 남은 술덧에 물을 부어 체에 걸러 먹었는데, 그게 막걸리이다. 따라서 막걸리는 일종의 ‘물 탄 탁주’이다. 그리고 체에 거른 후 남은 찌꺼기를 ‘술 지게미’라고 한다.

‘용수’는 대나무로 깔대기처럼 만든 일종의 여과제이다. 용수에 무명천을 씌워 발효가 끝난 술덧에 집어넣으면 용수 안에 맑은 술이 고인다. 발효가 잘 되면 용수가 쑤욱 빨려 들어가고, 발효가 잘 안되면 용수를 밀어낸다.

용수를 넣어 청주를 떠내지 않고 술덧을 바로 체에 걸러서 탁하게 먹을 수도 있는데, 이것이 ‘물 타지 않은 탁주’이다. ‘전내기’라고도 한다. 당연히 ‘물 탄 탁주’인 막걸리는 알코올도수가 낮고, ‘물 타지 않은 탁주’는 알코올도수가 높다. 막걸리는 쌀이 귀해 술 빚어 먹기 곤란했던 옛 시절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먹을 수 있도록 술에 물 타서 먹은 것이다. 그것도 쌀밥 구경하기조차 쉽지 않았던 서민들은 먹기 어려웠고, 양반집의 하인이나 중산층이 먹을 수 있었다.

용수

■체에 거르지 않고 먹는 탁주 – 이화주=탁주에는 체에 거르지 않고 먹는 탁주도 있다. ‘이화주’라고 부르는 탁주가 바로 그것이다. ‘이화주’는 걸죽한 죽 같아서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한다. ‘이화(梨花)’는 배꽃을 말하는데, 술에 배꽃이 들어간다는 것이 아니라 배꽃 필 때 술을 빚는다고 하여 ‘이화주’라고 부른다. 설기떡이나 구멍떡을 빚은 후 거기에 이화곡이라는 누룩을 넣고 발효시킨다. 물이 거의 들어가지 않아서 술빚기가 힘들고, 발효기간도 3개월 이상 걸린다. 일반적으로 술은 발효가 잘 될수록 좋지만, 이화주는 발효가 잘되면 액화가 되버려 죽같은 상태를 유지하기가 힘들다. 따라서 적당히 발효를 억제할 필요가 있다.

이화주는 고려 때부터 문헌에 전해 내려오는 술인데, 과거에 부유층이나 사대부가에서 노인들의 보양식이나 갓 젖을 뗀 어린 아이들의 간식으로 곧잘 이용되었다. 이화주에는 전분, 당, 알코올이 골고루 적당히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어린애가 경기(驚氣)가 들리면 그 경기를 풀어주기도 한다. 또한 사돈집에 보내는 인사음식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오늘날 이화주는 식사전에 식욕을 돋구기 위한 에피타이저(appetizer)나 식사 후의 디저트(dessert)로 활용된다. 요즘에는 한정식이 코스요리로 많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때 식전 또는 식후 요리로 이화주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약간의 레몬즙과 소금, 후추를 섞어 소스로도 활용할 수 있다.

요거트가 우유로 만든 ‘동물성 유산균’이라면, 이화주는 쌀로 만든 ‘식물성 유산균’이다. 플레인 요거트에 각종 과실이나 과실즙을 넣어 먹을 수 있듯이 이화주도 과실이나 과실즙, 잘게 부순 다크쵸코렛이나 견과류 등을 섞어 먹으면 훨씬 맛있다. 모임 자리에 이화주를 갖고 나가면, 그 날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이화주는 처음보는 신기한 술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맛있기 때문이다.

이화주

■막걸리 – ‘막’ 걸러먹는 술=막걸리는 ‘막’ ‘걸러’먹는 술이라는 뜻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옹기에서 발효가 끝나면 용수를 박아 청주를 퍼내고 남은 술덧에 물을 부어 체에 걸러 먹는데, 여기서 ‘막’이라는 말은 시간적 개념으로 ‘방금’이라는 의미도 있고, 방법적 개념으로 ‘대충’ ‘거칠게’라는 의미도 있다. 과거 양반들은 막걸리를 먹지 않고 주로 청주나 소주를 먹었고, 막걸리라는 표기도 옛 문헌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다. ‘막걸리’라는 한글표기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세기말 춘향전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에서이다. 이런 점에서 보아, 양반 입장에서 막걸리는 아랫것들이 먹는 술로서, ‘대충, 거칠게’ 만든 술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볼 것이다. 강원도의 향토음식인 ‘막국수’나 ‘막장’에서의 ‘막’도 이런 의미가 아닐까 싶다.

이화주

■동동주=그리고 막걸리주점에 가면 ‘동동주’라고 해서, 단지에 담아 일반 막걸리보다 조금 비싸게 파는 술이 있다. ‘동동주’는 첫째, 쌀알이 동동 뜬 상태의 청주를 말하기도 하고, 둘째, 밀막걸리와 차별하기 위해 쌀막걸리를 동동주라고 부르기도 하고, 셋째, 식당이나 주점에서 일반 양조장 막걸리에 식혜, 사카린, 사이다 등을 타서 달게 만든 술을 동동주라고 하기도 한다. 여하튼 ‘동동주’라는 술이 옛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어떤 술은 아니라는 점이다.

필자의 젊은 시절의 막걸리는 지금처럼 아스파탐이라는 인공감미료를 넣지 않아 술맛이 시큼털털했는데, 여기에 사카린이나 사이다를 타서 달게 만들어 동동주라고 이름붙여 비싸게 팔았던 기억이 있다. 후배들이랑 동동주를 먹으면 선배노릇 하느라 제법 술값이 나가기도 하였다.

■막걸리의 알코올도수=지금 막걸리의 알코올도수는 대부분 6도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1949년 이전에는 6도에서 12도까지 다양했다. 물타지 않은 16도짜리 막걸리도 있었다. 그런데 1949년에 국가에서 막걸리의 알코올도수를 8도로 제한했다. 1962년에 6도로 내렸다가 1982년에 다시 8도로 변경했으며, 1991년에는 도수제한을 아예 없앴다. 그래서 지금은 다양한 도수의 막걸리가 출시되고 있다.

이처럼 막걸리의 알코올도수가 오락가락하면서 막걸리 맛이 변하고 소비자들의 불신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8도에서 6도로 내릴 때에는 막걸리에 물을 탄 느낌이어서 소비자들이 찾지 않게 되고, 6도에서 8도로 올라가면 막걸리가격이 올라가 역시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는 처지가 되었던 것이다.

■카바이드 막걸리=과거에 ‘카바이드 막걸리’라고 해서 신문에 떠들썩하게 기사화된 적도 있었다. 실제 카바이드를 탄 막걸리는 없었는데, 막걸리에 대한 불신이 가져온 해프닝이라고 할 수 있다. 카바이드를 타면 술에서 역겨운 냄새가 나서 소비자가 바로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에, 카바이드를 탈 수가 없다. 국세청이 나서서 조사한 결과로도 카바이드 막걸리는 없었다고 한다.

막걸리에 대한 불신은 1965년 쌀막걸리 금지부터 시작된다. 1965년에 양곡관리법이 개정되면서 막걸리 제조에 쌀 사용을 금지했다. 그러면서 쌀 대신 밀가루, 옥수수가루, 보리쌀가루 등을 사용했는데, 맛이 시큼털털하고 거칠어졌다. 막걸리 소비가 감소했다. 그 후에는 막걸리 알코올도수의 잦은 변화, 양잿물이나 고삼을 탄 막걸리의 등장 등으로 막걸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소비도 당연히 감소했다. 막걸리가 떠난 자리를 맥주가 차지했다. 처음에 맥주는 비싸서 고급주에 속했으나 가격이 떨어지고, 막걸리의 불신과 맞물려 대중주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막걸리의 변신=오늘날 막걸리는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 옛 누룩을 사용하여 만드는 막걸리가 다시 등장하면서 고급스럽고 다양한 막걸리가 출시되고 있다. 밀누룩, 쌀누룩, 녹두누룩 등 다양한 누룩으로 제조한 막걸리가 등장했고, 붉은 홍국균을 이용한 빨간 막걸리도 있다. 쌀막걸리 뿐만 아니라 메밀막걸리, 보리막걸리도 선을 보이고 있고, 후발효를 활용한 스파클링 막걸리도 소비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 쌀을 기본으로 하되, 딸기, 쑥, 블루베리 등 다양한 부재료를 넣어서 맛과 향을 더한 막걸리도 출시되고 있다. 그야말로 막걸리의 천국이다. 그 종류가 너무 많아서 소비자들이 맛보기도 힘들 정도이다.

이러한 새로운 도약의 시기에, 국가의 역할은 사뭇 중요하다. 과거 국가는 막걸리를 농산물의 소비처로만 보고 정책을 세웠다. 수입된 밀이 많으면 쌀 막걸리를 금지시켜 밀 막걸리를 만들게 하였고, 쌀이 남아 돌면 잉여쌀의 소비처로 막걸리를 진작시켰다. 이러한 정책은 바뀌어야 할 것이고, 전통주는 말 그대로 전통을 계승•발전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글=정회철 전통주조 예술대표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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