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침내 21대 대통령이 결정됐다. 우리의 소중한 한 표가 모여 대통령을 선택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떤 문장을 세상에 띄울지를 지켜보는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가장 긴장감 있게 다가오는 대목은 왕의 즉위일보다 첫 교지가 내려지는 순간이다. ‘내가 나라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라는 무언의 선언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첫 문장은 국민에게 보내는 첫 신호다. 그 한 줄에 권력의 태도와 민심에 대한 감각이 드러난다. ▼정치는 말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말은 곧 기록으로 남고,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된다. 선거에서 이긴 날의 연설은 얼마든지 화려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건 첫 번째 정책을 어떤 문장으로 세상에 내놓느냐다. 관료들이 써준 원고가 아니라 통치자의 생각과 국민의 마음을 함께 담은 한 줄. 사람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다. 첫 문장은 단지 말이 아니라 첫 판단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시작은 환호가 멈추고, 뉴스 자막이 사라진 다음에야 비로소 찾아온다. 공약이라는 비단옷보다 중요한 건 그것을 어떻게 실행할지를 보여주는 행정의 언어다. 통치자의 말은 곧 그의 윤리이고 태도다. 문장이 명확하고 단단해야 정책도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경우 첫 문장은 국민의 감정을 달래기 위해 쓰인다. 그러나 정치는 달래는 일이 아니라 설득하고 책임지는 일이다. 수사(修辭)로는 기대를 살 수 있어도 공동체를 이끌 수는 없다. ▼선거는 끝났지만 국정은 이제부터다. 권력은 선출로 시작되나 정치는 매일의 선택과 설명으로 이어진다. 지도자의 언어는 단지 선언이 아닌 국민을 향한 설명이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설레는 꾸밈말이 아니라 믿음이 가는 한 문장이다. 기대는 화려한 연설로 피어오르지만, 신뢰는 단단한 말투에서 시작된다. 조선시대 왕의 교지가 통치의 각오를 담았듯, 그 한 줄이 이 나라의 운명을 가늠할 첫 신호가 되어야 한다. 국민은 그 문장에서 미래를 가늠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