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권은 생명과 같은 귀중한 권리” 1738년 프랑스 인권선언 中….
얼마 전 우리는 민주주의의 생명과도 같은 선거를 치렀고 그 결과로 새 정부가 출범했다.
투표권 쟁취의 역사를 곰곰이 반추해보면 ‘민주주의’ 라는 낱말의 무게감이 달리 느껴진다.
19세기 영국은 귀족과 지주 계급의 남성만이 투표권을 갖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인구의 5% 수준이었다.
급기야 1838년 영국의 노동자들이 보통선거권을 요구하며 일어섰다. 세계사 수업 시간에 한번은 들어봤을 ‘차티스트 운동’이다.
차티스트 운동은 당시 가장 발전된 국가였던 영국에서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차티스트들의 바람은 쉽사리 이뤄지지 않는다.
영국에서 유권자가 확대되는 선거법 개정은 차티스트 운동 이후 50년 가까이 지난 1884년이 되어서야 이뤄진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에게는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영국에서 여성은 1918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1776년 독립한 미국은 최초의 선거법에서 일정 정도의 재산을 보유한 백인 남성만이 투표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놀랍게도 200년 가까이 지난 1960년대까지도 미국의 흑인들은 투표를 할 수 없었다. 흑인들은 차별에 저항해 격렬히 투쟁했고 1963년 워싱턴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인류사에 길이 남게 될 명연설 “I have a dream(나에겐 꿈이 있습니다)”을 외친다. 당시 그의 연설 현장에는 25만명이 몰려들었고 전 세계 민주주의에 새로운 영감을 줬다.
그는 연설 마지막 “Free at last! Free at last! Thank God Almighty, we are free at last!(마침내 자유가! 마침내 자유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드디어 자유로워졌나이다!)를 외쳤다. 2년 뒤인 1965년 미국의 대통령 린든 존슨은 투표권법에 서명하며 인종과 피부색에 상관없이 모든 미국인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 투표의 역사는 짧지만 드라마틱하다. 1946년 대한민국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임시의정원 선거가 실시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보통선거로 성인 남녀 모두에게 평등한 선거권이 주어졌다. 2년 뒤 제정된 제헌헌법은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의 4대 원칙을 규정했다.
군사정부 시기 대통령 직선제가 폐지되는 등 위기도 있었지만 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확고한 민주주의 체제를 지켜오고 있다.
하지만 현대의 시민들에게 민주주의는 마치 ‘공기’와도 같아서 인지 어렵게 쟁취한 가치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좌우의 이분법적인 구분과 지역갈등은 극심해졌고 숭고한 투표권마저도 희화화되고 있다.
비상계엄으로 민주주의가 위태롭게 시험대에 오르기도 했다. 계엄과 탄핵 이후 치러진 대선 기간 선거폭력은 2.2배로, 현수막·벽보 훼손 등은 3배로 급증했다. 부정투표 주장도 사그러 들지 않았다.
대선은 끝났지만 내년 6월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영위하는 한 투표는 계속될 것이다.
챗GPT에 “투표가 세계사를 바꾼 사례를 알려달라”고 질문했다. 공교롭게 인공지능은 양 극단의 사례를 소개했다.
먼저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총선을 예로 들었다. 이 선거에서 넬슨 만델라가 이끄는 ANC가 승리했으며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정책)가 종식됐다. 인종차별 체제가 민주주의와 투표라는 제도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체됐다.
반면 1932년 독일 총선을 통해 나치당이 집권하고 히틀러가 총리로 임명됐다. 전 세계는 2차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광기에 휩싸였다.
챗GPT는 나치의 예를 통해 투표 결과가 민주주의 자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고 평했다.
투표라는 행위는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지만 역설적으로 민주주의를 저절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결과는 유권자가 만들어간다. 투표권은 얼마나 무겁고 귀중한 권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