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철만 되면 정치는 쇼가 된다. 6·3 대선을 앞두고 흘러넘치는 말의 홍수 속에서 후보들은 저마다 ‘국민을 위한 약속’이라며 돈을 쏟아붓겠다고 외친다. 아동수당은 성인이 되기 직전까지 확대되고, 기초연금은 더 두툼해지며, 자영업자의 빚은 눈 녹듯 사라진다. 법인세도 줄고, 소득세도 감면된다. 어떤 후보는 국민연금을 갈라놓겠다고 한다. 그 재원이 어디에서 오는지, 어떻게 조달할 수 있는지는 모른다. 알려고 하지 않는다. 지금은 표가 먼저다. ▼‘근묵자흑(近墨者黑)’. 먹을 가까이 하면 옷이 검어진다는 뜻이다. 선거 때마다 터지는 이 선심 공약 경쟁은 일종의 감염병이다. 누군가 하나 쏘아 올리면, 다른 이들도 따라붙는다. 말로는 재정건전성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흥정의 정치에 불과하다. 현금성 퍼주기는 순간의 갈증은 해소할지 몰라도, 갈수록 바닥이 드러나는 재정의 물꼬는 틀어막지 못한다. 1,200조원이 넘는 국가 채무, 4년 연속 재정 적자라는 현실 앞에서도 눈감은 채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구호만 외친다. 정치는 마술이 아니다. 없던 돈이 생기지 않는다. ▼고사 속 진(陳)나라의 환관 조고(趙高)는 사슴을 끌고 와 말이라 우겼다. 황제는 침묵했고, 신하들은 맞장구쳤다. 진나라의 쇠락은 그로부터 시작됐다. 지금 정치권의 모습이 딱 그렇다. 눈앞의 표를 위해 사슴을 말이라 부른다. 공약이라는 포장을 두른 채 숫자로 장난치고, 경제라는 기반 위에 허상만 올려놓는다. 비판은 ‘국민의 뜻에 반한다’며 눌러버리고, 검증은 ‘정치 공세’라며 외면한다. 어느새 우리는 이 말의 진위를 가릴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정치는 거짓을 오래 숨기지 못한다. 대가는 반드시 돌아온다. 그리고 그것은 늘 늦게야 실감된다. ▼고삐 풀린 선심 공약은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약속은 결국 모두가 짊어져야 할 짐이 된다. 정치는 누가 더 많이 주겠다는 경쟁이 아니라, 누가 더 책임 있게 설계할 수 있는가의 싸움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