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닥쳤다. 10년 동안 네 명의 대통령이 바뀌는 사상 초유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이루어 낸 이번 선거의 의미는 남다르다. 계엄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분열과 대립은 극에 달했고, 사람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대한민국에서 흔들리던 민주주의를 되살린 것은 정치의 중심을 바로잡아 주었던 국민이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아직 이 지난한 여정을 끝내지 못할 운명이다. 대한민국은 다시 좋은 나라 만들기를 이어갈 수 있을까?
대통령이 임기를 못 채운 과정을 되돌아보면 국민의 선택이 항상 올바른 것만은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오만과 독선, 무지와 불통으로 자리를 지키지 못했던 지도자를 선택한 것도 국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진정한 힘은 회복력에 있다. 민주주의는 실패한 선택을 국민 스스로 바로잡을 수 있는 최종적 수단을 국민에게 부여하기 때문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다. 치열한 투쟁 끝에 권력을 잡은 엘리트들이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은 다반사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엘리트가 오만과 독선에 빠져 거만한 얼굴을 들어 올리는 시점이다. 국민이 끌어 내린 두 명의 대통령도 권력에 안주하다 불행한 결말을 맞고 말았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를 책임진 선장은 그 배가 어느 바다에 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식별하고, 길을 찾기 위해 힘을 다해야 한다. 사방에 암초가 널린 항로에서 잠시라도 정신을 놓으면 모두가 위험에 빠진다. 국가라는 배를 책임진 지도자는 편히 잠들 수 없다. 새로운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힘든 시기를 헤쳐가야 할 책임 앞에 설 것이기 때문에 국민의 신뢰와 지지가 절실하다.
어려운 시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탁월한 임기응변의 지략도 필요하다. 그러나 리더의 진정한 책임은 번영을 위한 토대를 닦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래를 위한 터전을 닦는 일이 위대한 정치가의 본업이어야 한다. 얄팍한 술책과 달콤한 언변으로 어려움을 회피하는 것은 금방 바닥을 드러낸다. 지속 가능한 번영과 미래 세대를 위한 희생을 생각하지 않는 지도자는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피하기 어렵다.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은 좋은 밭을 일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밭이 좋으면 무얼 심어도 잘 되지만 밭이 나쁘면 무얼 뿌려도 클 수 없다. 빈곤과 내전으로 고통받는 나라들에도 천재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재능 있는 인재들이 성장할 터전이 없으면, 그들의 인생은 피어날 수 없고, 운명은 비참해진다. 대한민국이 지금의 번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이 성장할 더 좋은 환경이 개척되고, 민주적 제도가 뿌리를 내리고, 더 큰 기회가 열리는 선순환의 기제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숲은 오랜 세월 바위산을 뚫고, 잎을 떨구고, 몸을 썩혀 거름이 되어 다음 세대를 키우는 나무의 희생 없이 탄생하지 않는다. 새로운 세대는 앞선 세대의 유산을 양분으로 더 크고 울창한 숲을 만들어간다. 세대를 이어가며 땅을 일구고, 양분을 축적해서 더 좋은 생명의 터전을 개척하면 생태계도 성장한다.
생명체들은 좋은 환경이 마련되면 스스로 번영할 수 있다. 건강한 생태계에는 어떤 도움도 필요 없다. 더 좋은 사회가 성장하는 원리도 다를 바 없다. 성장의 바탕이 마련되어 생태계가 자신의 영토를 일구듯 사회도 스스로 성장하고 번영할 수 있는 환경을 요구한다. 정치의 임무는 사람이 성장하기 좋은 사회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좋은 나라 만들기의 비결은 생각보다 단순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원칙을 세우고 강하게 키우는 데 있다. 인간의 가치와 존엄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공동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고 결과를 존중하는 것, 성공을 사회와 나누고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더 잘하는 일꾼을 신중하게 판단해서 결정하면 된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이미 거대한 산으로 성장했다. 누구도 이 큰 산을 혼자 움직일 수 없다. 산을 구성하는 사람과 집단의 믿음과 희생과 협력이 없다면 대한민국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큰 산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민이라는 무게중심에 정치라는 방향타가 결합해야 한다. 국민과 정치는 한 몸의 유기체이다. 정치의 중심을 국민이 세우고, 정치의 지혜로 더 큰 국민의 힘을 빚어내고, 미래의 문을 열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이는 새로운 정치 지도자와 국민이 함께 떠안은 과제이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 모두 평범한 인간이며 우리와 다르지 않다. 요동치는 정치의 바닥에서 균형을 잡아 주는 것은 유권자이다. 대한민국은 유권자의 안목이 정치의 수준을 결정하는 민주주의라는 삶의 터전에 살기로 마음먹었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선택의 최종 책임은 유권자의 몫이다. 유권자의 현명한 판단이 중요한 이유다.